아버지는 병약했다. 몸이 아프니 농사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답도 얼마 안 되는 영세농이었다. 농사일을 못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손이 필요했다. 가뜩이나 소출은 적은데 남의 손을 빌리니 실제 소득도 적었다.아버지는 위장이 좋지 않아 이밥(쌀밥)을 드셔야 했다. 쌀이 부족해 장리쌀(장려쌀)을 빌리곤 했는데, 한 되를 빌리면 가을에 한 되 반을 갚는 식이었다. 지금의 고리채와 비슷한 방식이었다.국민학교 6학년 가을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내년에는 중학교 입학금과 공납금이 엄청나게 오른단다." "박정희가 혁명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