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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위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JTBC, <모자무싸>)는 뾰족한 드라마다.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보다 정신과 대기실에서 자주 볼 법한, 불안에 시달리는 똑똑한 신경질쟁이로 가득하다. 이런 부류의 언어와 행태를 이토록 좁고 깊게 묘사한 드라마가 흔치 않아서, 재미를 떠나 시도 자체로 응원하고 싶은 드라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가 쓰고 <동백꽃 필 무렵>의 차영훈 PD가 연출했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은 20년 동안 14편의 시나리오를 쓰고도 감독 데뷔를 못한 가난한 남성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영화인을 묘사할 때 흔히 덧씌우는 낭만적인 필터가 이 드라마 초반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황동만은 육체노동을 하는 형 황진만(박해준)과 허름한 원룸에서 함께 산다. 그들의 공간, 형의 얼굴, 동만의 옷차림 모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다. 결코 매끄럽다고 할 수 없지만 오버액팅보다 야생성에 가까운 구교환의 연기가 황동만 캐릭터에 페이소스를 더한다.

황동만은 사방에 독설을 난사한다. 그의 뒤틀린 심리는 대사로 낱낱이 설명된다. 동만은 신작을 낸 영화감독 박경세(오정세)에게 오프라인, 채팅, 인터넷 악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어 공격을 퍼붓는다. 박경세는 그런 동만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대신 똑같이 인신공격으로 응수하면서 자기 불안과 좌절을 달랜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과묵했는지 떠올려보면 내장까지 쏟아낼 기세로 신랄한 말을 토해내는 이번 인물들은 이변이다. 그 스타일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 작품의 언어가 캐릭터의 특징에 맞춰 신중하게 설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황동만과 박경세는 직업상 캐릭터 분석에 익숙하고 표현 욕구 가득하며 만인의 평가에 노출된 인물다운 언변을 구사한다. 문화 소비자에서 창작자로 전환을 꿈꿔보았거나 그 이상의 시도를 해본 감도 높은 시청자, 혹은 언어의 기표와 기의, 그에 반영된 정신의 층위를 예민하게 분별하도록 훈련된 사회인은 작가의 통찰에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대중 보편이 공감할 매력도 존재한다. 박해영 작가는 자기가 속한 세계에 어색함, 민망함, 위화감 따위를 느끼는, 말하자면 ‘Awkward’한 인물을 즐겨 묘사하는데, 황동만뿐 아니라 <모자무싸>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변은아(고윤정)도 그렇다.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감정 분석 디바이스 체험자로 발탁된다는 설정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더 깊이 탐구하고 직접 표현할 계기를 마련했다. 이 체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던 두 아웃사이더가 가까워지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변은아는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탁월해 감독들의 신임을 받지만 그 때문에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는 PD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변은아와 황동만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정서적, 직업적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사이 로맨스, 그들이 각자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습, 그리고 변은아의 가족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모자무싸>에는 그 밖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제정신인 것 같지만 그래서 무서운 고혜진 PD(강말금), 늘 눈이 풀려 있는 동만의 형 진만, 아슬아슬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배우 장미란(한선화) 등이 각자의 장면에서 시선을 잡아끈다.

요컨대 <모자무싸>는 개성, 메시지, 에너지, 캐릭터, 대사, 앙상블이 모두 강력한 드라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가치함에 몸부림칠 때 드라마만큼 좋은 도피처는 없다. 이번 작품은 유독 그럴듯하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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