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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우리는 ‘선톡’을 망설이고, 남자의 연락만 기다릴까?

솔직히 말해볼까요? 여자라면 한 번쯤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봤을 거예요. 직접 해봤을지도 모르죠. “나 먼저 연락해도 될까?” ‘선톡’을 해도 괜찮겠느냐는 친구들의 고민에 저는 늘 같은 말을 해줬습니다. “당연하지, 네가 하고 싶으면 해!” 아마 그들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답이었을 거예요. 돌아오는 반응은 언제나 같았거든요.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좀 아니지 않나?’라는 표정이요.

Getty Images

가끔은 긴 설교가 따라오기도 합니다. ‘남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의 장점’ 혹은 ‘쿨한 척이 빚어내는 신비로움’에 대한 내용이요. “알 듯 모를 듯한 부분이 있어야 재미있잖아.” 아니, 제가 말한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 않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죠.

물론, 이해합니다. 왜 ‘선톡’이 이 정도로 고민해야 할 이슈인지 말이죠. 근거 없는 두려움은 아니에요. 실제로 피부로 느낄 정도죠. 데이팅 앱의 발달은 관계의 불균형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갈등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는 늘 두려워합니다. 어제까지 연락하던 그가 잠수를 타버리진 않을까? 알고 보니 ‘금사빠’라 순식간에 나에게 식어버리진 않을까? 어쩌면 어장 관리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외에 온갖 연애 관련 신조어에 해당되는 일을 직접 겪게 될까 봐 언제나 긴장하죠. 한 친구가 말했듯 누군가와 ‘썸’을 타는 내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오히려 관계가 잘 풀리는 게 희한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리는 데이팅 앱에서 만나 몇 년간 연애 중이거나 결혼에까지 골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신화처럼 받아들이잖아요. 힌지(Hinge)에서 만나 결혼한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와 아티스트 라마 두와지(Rama Duwaji)가 대표적인 예죠.

이런 커플은 모두가 꿈꾸지만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케이스로 여겨집니다. 백마 탄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를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옛날이야기와 비슷하죠. 현대의 ‘썸’은 스마트폰과 시장경제까지 개입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개개인에겐 데이팅 앱이 제공하는 조그만 기회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지니까요. 작은 실수 하나로도 ‘언매치’를 당할 수 있잖아요. 무엇이 실수였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할 때도 많고요. ‘내가 별로였나?’라는 자책감만 안은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얼마 전 캐롤린 베셋과 존 F. 케네디의 짧고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공개됐습니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극 중 모든 이야기가 옛날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만 말씀드릴게요. 배경이 1990년대 초반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중에서 예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관심 없다는 듯 행동하고, 남자들은 그녀들을 공략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뉴욕 최고의 독신남이죠. 모든 여자는 그에게 조금도 애타지 않는 척합니다. 여자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고요.

존이 캐롤린과 썸을 타기 시작할 무렵, 캐롤린은 그에게 전화번호를 주지 않습니다. 존은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캘빈클라인에서 정장을 주문하죠(캐롤린은 캘빈클라인에서 일했어요. 이 정도는 스포일러가 아니겠죠?). 이 에피소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면 절대 쉽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 그 시절의 ‘연애 고수’ 캐롤린은 친구 그레이스와 통화하며 이렇게 조언합니다.

“그레이스, 너 그 남자에게 메시지 남겼어?”

“두 개 남겼어.”

“이미 넘어왔다고 생각하면 그 남자가 널 신경 쓰겠어?”

여자가 쉽게 마음을 주면 결국 남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건데, 너무 구리지 않나요? 이 장면을 보며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제가 예전에 싫어했던 10대 잡지의 연애 상담 코너에서나 보던 낡은 사고방식이니까요. 그런데 2026년에도 이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다들 대외적으로는 아니라고 할 거예요. 하지만 진심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친구들끼리 연애 상담을 할 때도 그대로 반복되잖아요. “기다리게 해. 너무 쉽게 마음 주지 마.”

@vicmontanari

어쩌면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연애에서 나쁜 결말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동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잡지에서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잖아요. 전혀 귀족이 아닌, 아주 평범한 여자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절제력을 무기 삼아 백마 탄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요.

그런 이야기 속 백마 탄 왕자는 절대 ‘가벼운 여자’와는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의 ‘절제력’이 주목받는 것이죠. 솔직히 말하면 아주 구시대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서사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전승되는 이야기죠. ‘즐길 여자’와 ‘결혼할 여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존재한다고 규정하는 거예요.

이런 서사는 미디어를 통해 퍼졌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에도 빠지지 않았죠. 극 중 샬롯 요크는 친구들에게 돈 많은 남편 얻는 법을 설명하며 <룰즈(Rules)>라는 책에 실린 내용을 언급합니다. 섹스는 다섯 번째 데이트까지 미룰 것, 주도권은 남자에게 맡길 것,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할 것… 샬롯은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남자를 통해서, 남자를 통해야만 말이에요. 본인 스스로가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자본을 얻는다는 가능성은 애초에 고려 대상에 올라 있지도 않죠. 이를 포기하는 선택지도 당연히 없고요.

지금은 다소 주춤한 상태지만,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은 놀라울 정도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이분법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남녀 관계에서 여전히 먼저 다가오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건 남자고, 다시 연락할지, 언제 연락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남자입니다.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는 셈입니다.

그동안 여자들은? 기다립니다. 우리의 시간은 덜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사랑할 다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어떤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웨일스 공비 케이트 미들턴도, 페미니스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초조해해요.

@vicmontanari

저는 첫 연애를 시작한 10대 시절부터 늘 주장해왔습니다. 주도권을 잡으라고, ‘쉬운 여자’로 보일까 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정서적 책임을 실천하고, 급진적인 솔직함과 감정의 취약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야 우리의 욕망이 고통과 불안의 원천이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놀이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 뭘 알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직감에 따라, 속에서 솟아오른 감정을 입 밖으로 내놓은 것에 가까웠죠.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당시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죠. 이제 의심하지 않습니다. 정서적으로나 성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가 낡은 성차별적 구조를 유지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될 거예요. 남자에게 주도권을 맡긴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안정이나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요.

왜 우리는 여전히 규칙을 바꾸지 못하고 있을까요?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어째서 속으로는 여전히 ‘여자가 쉽게 마음을 주면 안 돼, 그래야 네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이라는 구절을 곱씹고 있는 걸까요? 이런 태도를 버렸을 때 우리가 얻을 건 무엇이고 잃을 건 뭘까요? 얻을 게 뭔지는 솔직히 확신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이런 태도를 버렸을 때 우리가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제발, 자매들이여, ‘선톡’ 해도 괜찮아요. 우리 더 이상 연락을 둘러싼 권력 게임에 휘말리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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