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맥주 한잔 기울인 것이 인상의 전부였다. 군침 돌게 하는 음식과 말랑한 망고 한입이면 그만이었고. 그래서 2022년 방콕을 마주했을 때, 발바닥 따끔할 정도로 열기 오른 태국 왕궁의 바닥처럼 도시가 뜨겁게 느껴졌다. 새롭게 재편 중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마천루를 기대한 건 아니라는 사실은 태국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지해서였다.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 호텔 라운지에 서서 오프닝 행사에 모인 1,800명의 게스트를 보면서 느낀 바다. 세계적인 DJ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가의 위상 혹은 문화 발전의 가늠자처럼 보였으니까. 그 옛날 화려하던 홍콩과 도쿄를 방콕이 잇는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
킹 파워 마하나콘 빌딩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은 방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한 킹 파워 마하나콘 빌딩에 있다. 지난 7월 오픈 후 본격 손님맞이에 나선 호텔은 12월 14일 그랜드 오픈을 기념하며 성대한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스탠더드 인터내셔널이 아시아 플래그십이라 명명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미와 빌보드를 휩쓴 디플로를 비롯해 모던 재즈계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오닉스 콜렉티브,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신을 휩쓴 암스트롱과 리치 메디나까지 세계적인 뮤지션이 한자리에 모였다. 벌레스크의 여왕으로 불리는 디타 본 티즈도 시그니처 퍼포먼스인 마티니 글라스를 선보인다고 해 기대감을 높였다.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 그랜드 오프닝
게다가 이탈리아 <루오모 보그>의 패션 디렉터 로버트 라벤스타이너, 샤넬 최초의 흑인 남성 모델 알톤 메이슨까지 먼 거리를 달려와 오프닝을 축하했으며, 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지상철 촌농시역 계단에 태국과 싱가포르의 셀러브리티를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들어 장관을 이룰 정도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이날 호텔은 공간의 특징에 따라 컨셉과 음악을 달리해 게스트가 자유롭게 층을 이동하며 음악을 즐기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호텔 구석구석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영리한 배치였고, 예측은 적중했다. 타임테이블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들 덕분에 로비 라운지부터 테라스, 수영장을 오가는 엘리베이터에는 만차 표시가 꺼질 틈이 없었으니까.
다이닝 룸에서는 칵테일을 마시며 로컬 보컬리스트의 소울 넘치는 음악을 들었고, 야외 수영장에서는 선베드에 누워 모던 재즈를 들으며 근사한 방콕의 야경을 두 눈에 담았다. 무엇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3층 연회장을 클럽으로 꾸며 진행한 디플로의 라이브 공연이었다. 몇 겹의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사운드를 즐기는 것도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였으니까. 디플로의 손짓 하나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떼창으로 디플로를 감동시켰다. 완벽한 밤이었다.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
귀 호강 제대로 하게 한 음악, 훌륭한 서비스도 좋았지만, 역시 트렌디한 감각의 디자인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천재 디자이너라는 극찬이 아깝지 않은 하이메 아욘이 155개 룸과 스위트룸, 6개 레스토랑과 미팅 룸까지 호텔 전 공간의 디자인에 참여한 결과다. 그뿐인가. 리셉션에는 호안 미로의 조각상 인물이 그 흔한 ‘Don’t Touch’ 표시도 없이 놓여 있다. 대부분이 미로의 작품인지도 모를 만큼 호텔과 한 몸처럼 놓인 모습은 뜨악할 정도의 신선한 충격을 건넨다. ‘인물’ 외에도 보물찾기 하듯 수많은 작품이 호텔 곳곳에 숨어 있다. 드러내지 않고 동기화하는 것, 이 정도가 바로 우리의 기준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숙박이 아니어도 방문할 가치는 또 있다. 더 스탠더드 그릴 레스토랑이 새로운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굽기의 고소한 스테이크 맛이 주말 밤 레스토랑을 고객으로 채운다. 도심 속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더 파를롤 레스토랑의 조식은 노 리미티드!, 무한대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호사를 선사한다. 게다가 투숙객에게는 킹 파워 마하나콘의 루프톱 방문권을 주니 한적한 밤, 관광객 없는 방콕의 야경을 오롯이 독점할 기회다.
더 스탠더드 그릴 레스토랑
더 스탠더드 방콕 마하나콘 스카이비치
꼬박 10년 만의 방콕 방문이라는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그랜드 오프닝 밤 내게 게스트 하우스에서 술병을 기울이던 카오산 로드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그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다. 방콕 여행 문화의 완벽한 변화를 의미한다. 배낭여행자의 도시에서 나아가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방콕의 새로운 기준이 그 증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