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에 밀레니얼 세대의 진입이 활발하다. 투자 개념으로 보기에 이들의 플렉스엔 이유가 많다.
10년 전, 어느 옥션의 프리뷰 현장에 사탕이 준비됐다. 생강 사탕, 흑설탕 사탕, 박하사탕 등은 경매에 참석하는 어르신을 위한 배려였다(프리뷰는 경매 출품작을 감상하고 상태를 확인하는 전시다). 1~2년 전부터 풍경이 달라졌다. 루이 비통슈프림 재킷을 입고 리세일 가격이 더 비싼 스니커즈를 신거나 톰 브라운으로 위아래를 빼입은 밀레니얼 세대가 드나든다.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의 저자 이지혜는 미술 시장이 급격히 변했다고 말한다. 10년 전에 제가 컬렉터라고 하면 체스나 장기 애호가를 보듯 했죠. 20대 젊은 애가 취향이 특이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뿐 아니라 누군가 카우스(Kaws)의 아트 토이를 산다고 하면 장난감 모으는 오타쿠로 봤죠. 지금은 적극적으로 미술 시장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었어요. 특히 제가 미술품을 부동산처럼 실물 자산으로 접근해 투자했기에 아트테크를 많이 묻죠.
미술 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 1~6월 미술품 경매 거래액이 1,438억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보다 세 배 늘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모 작가의 100호 작품은 3년 전 1,200만원이었는데, 최근 경매에서 1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런!
거센 성장세의 이유로 밀레니얼 세대의 진입이 거론된다. 부동산에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유동자금이 아트테크에 몰렸다는 것. 올해 컬렉팅을 시작한 38세의 어느 디자이너도 그렇다. 투자처를 찾아 헤매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아트테크를 알게 됐어요. 미술 컨설팅을 한다는 업체에서 교육비를 뜯겼지만 지금은 좋은 딜러를 만나 김환기 화백과 김우진 조각가의 작품을 구입했죠. 시작은 안목을 자랑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서였지만 지금은 소장품을 애완동물만큼 사랑해요.
또 다른 30대 직장인은 원래 금화, 은화 등의 코인 컬렉터였다. 코인 도안에 미술 작품이 많아 자연스레 아트테크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온라인 경매에서 윤위동 작가의 작품을 100만원에 구입했다. 주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구입한다. 직장인 월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격, 직접 발품을 팔아 좋은 작가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기사를 위해 20여 명의 밀레니얼 컬렉터를 인터뷰한 결과, 영앤리치가 아닌 이상 보통 100만~300만원대 작품을 구입하며, 컬렉팅의 시작은 1~3년 새였다. 그들 모두 갈수록 금액과 보유 작품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이들의 아트테크는 가격대가 높을수록 환금성이 떨어지기에 가격은 다운사이징하면서 보유 기간은 짧게, 환금성이 좋은 작품 위주다. 대가의 블루칩 작품을 분할 소유하는 방법도 유행이다. 작품을 많게는 수백 명이 소액 투자해 각자가 나누어 소유하고 리세일을 통해 돈을 번다. 그 플랫폼 중 하나인 테사(Tessa)는 2020년 론칭 당시 회원 중 절반이 밀레니얼 세대였다. 테사의 김형준 대표는 분할 소유의 유행을 이렇게 분석한다. 가상 화폐 열풍에서 보듯 스스로 참여하고 곧바로 결과를 얻어내는 밀레니얼의 투자 스타일이 미술품 소액 투자 방식과 맞아떨어졌어요. 회수 주기가 빠르다는 것도 특징이죠. 다른 세대에 비해 밀레니얼 사용자는 공모에 참여하자마자 마켓에 되팔곤 해요. 테사는 최근 성수동에 실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고객 전용 라운지를 열었다. 경험적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33세의 해양 방위 연구원 역시 테사와 소투(Sotwo) 같은 앱으로 미술품을 분할 소유한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플랫폼에 열려 있죠. 주식처럼 한 주씩 부담 없이 미술품을 분할 소유하는 플랫폼에 관심이 높아요. 거장의 대작에 100만분의 1만큼만 지분이 있어도 만족감을 느끼고, 언제든 화폐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의 미술 시장 진입 이유가 투자 때문만은 아니다. MZ세대의 기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미술 시장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컬렉터는 자택 지하 창고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미술품 컬렉팅을 순수한 취미로 보지 않는 시선도 한 가지 이유였다. 하지만 밀레니얼 컬렉터는 이거 샀어, 이거 내 방에 걸었어라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컬렉션을 자기표현 수단으로 여긴다. BTS의 RM처럼 미술품 컬렉팅을 자연스레 공개하는 셀럽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취재를 위해 공지를 올리자 이틀 만에 수십 명의 밀레니얼 컬렉터가 연락을 취해왔다. 이들은 자신의 컬렉팅을 자랑스러워했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특히 요즘 미디어가 미술 투자에만 초점 맞추는 것을 우려했다. 이들은 취향 만족을 위해 컬렉팅하는 경우도 많았다. 소비 대상이 대중적인 것에서 아직은 희귀템인 예술품으로 이동한 것이다.
27세의 한 대학생은 한정판 스니커즈를 되파는 스니커테크가 너무 대중화돼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카우스, 하비에르 카예하(Javier Calleja)의 아트 토이를 시작으로 100만원에서 1,000만원대의 판화와 원화를 고루 수집한다. 갤러리를 통하지만 다른 컬렉터에게도 구매한다. 기성세대가 오프라인 옥션과 갤러리에서 구입한다면 우린 스니커즈를 살 때처럼 해외 직구와 개인 매물을 통하기도 하죠. 앞으로 미술 시장에 젊은 세대가 더 유입될 거예요. 문화를 이끄는 세대가 주요 소비자가 되니까요.
심상윤(26세) 에이치픽스 기획자는 수입의 80%를 미술품에 쓴다. 몇몇 갤러리는 리셉션에 가격 리스트까지 올려요. 그때 대가의 판화가 조금만 절제하면 닿을 수 있는 가격임을 알았죠. 대가의 원화는 억대라 눈으로만 감상하고 중소형 갤러리에서 신진 작가의 작은 작품을 즐겨 구입해요. 최근엔 온라인에서 그라플렉스(Grafflex) 작품의 선착순 구매에 성공했어요. 핫한 스니커즈 발매일 같았다니까요. 우리 세대에게 미술품 수집은 골프처럼 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올릴 취미로 부상하고 있죠. 기존 세대에게는 안전 자산과 투자의 가치가 강했다면 우리 세대에서는 즐기고 뽐내는 일종의 문화적 소비이기도 해요.
대학생 이소와(25세)는 MZ세대에게 컬렉팅이란 소비적 놀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세대는 그 물건이 좋으니까 사는 거였어요. 구매하는 행위에 대한 인식은 찾아보기 어려웠죠. 하지만 요즘 세대는 달라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모습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거나 에르메스를 사는 행동을 플렉스라 하잖아요. 플렉스란 단어가 최근에 유행했듯이 소비하는 행위 그 자체가 즐거운 소비적 놀이죠. 대상인 물건(컬렉팅에서는 작품)보다 앞서요.
이윤희 큐레이터는 5월에 열린 아트 부산에서 솔드 아웃 행렬에 무척 놀랐다. 자칫 가벼워 보이는 신예 작가들의 작품까지 모두 판매된 것. 밀레니얼 세대는 박서보, 이우환 같은 아카데믹한 작품만큼 신인에게도 많이 열려 있어요 브랜드 옷을 사 입듯이 자기 취향에 맞는 젊은 작가를 선호하죠. 현대미술의 기존 컬렉터는 작가의 현재 위치, 소속 갤러리, 해외 전시 여부 등 레퍼런스를 무척 꼼꼼히 따지거든요. 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열린 거죠. 저도 기존 틀에서 벗어난 그래피티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밀레니얼 컬렉터는 작가도 직접 찾아낸다. 때로는 갤러리보다 정보가 더 빠르다. 그 주요 매체는 SNS다. 강대원(29세) 바이오 기업 기술원은 SNS에서 전시 소식을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작가와 메신저로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다. 30대 어느 방송국 직원은 직접 작가에게 DM을 보내 원하는 그림을 부탁하고 가격을 협상해 수원역에서 직거래했다. 김연진(32세) 닥터쁘띠강남 원장도 작가와의 소통을 중시한다. 흔히 투자 얘기를 많이 하지만, 결국 작품과 정신적 기저의 주파수가 통할 때 인연이 닿는다고 여겨요. 남재현, 이동욱, 류수연 작가님 모두 DM을 통해 대화를 나눴어요. 그들 모두 저처럼 1980년대생인 데다 가치관과 철학이 통해서 작품을 구입했죠.
민범기(33세) 주재원도 작품 수집은 갤러리를 통하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부단한 노력이라 표현한다. 제가 원하는 작가의 작품을 손에 넣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에 마지막에 그 그림이 제 방에 걸렸을 때 성취감이 커요. 작가 펜시브모드(Pensivemode) 역시 작품에 관한 DM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확실히 창구가 다양해진 것 같아요. 물론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갤러리와 아트 페어가 온오프라인으로 창구를 넓힌 것도 밀레니얼 컬렉터를 양산했다. 이형관(34세) 도시 계획가는 2년 전 을지아트페어, 솔로쇼 등을 통해 컬렉터가 됐고 매주 갤러리에 들른다. 주로 디스위켄드룸, 에브리데이몬데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처럼 1980~1990년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갤러리를 선호한다.
모바일 옥션 플랫폼도 성장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인 플리옥션 사용자의 90%는 20~30대다. 이연주 대표는 국내 옥션에서 일할 때 미술 시장의 폐쇄성과 한계성을 느끼고 플리옥션을 만들었다. 여전히 국내 다수의 갤러리와 옥션사가 유명한 원로 작가의 작품, 이슈가 된 작품만 취급했기에, 취약 계층의 신진 작가 혹은 차세대 작가의 판로가 활성화되지 못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작가를 만나지 못했죠. 코로나19 이후 국내 최대 호황기를 맞이한 미술 시장이지만 글로벌 미술 시장에 비해 여전히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거래 방식에 머물러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컬렉터의 신규 진입 허들이 높아요. 이런 문제를 체감하고 유럽이나 미국의 플리 마켓 문화를 떠올렸죠. 잘 차려입은 큐레이터의 어려운 용어를 들어가며 고가의 미술품을 어렵게 구매하지 않고, 거래와 소통을 모바일로 하는 거죠. 이연주 대표 역시 밀레니얼 컬렉터의 특징을 즐기는 소비를 중시하고 커뮤니티로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거라고 덧붙였다.
배카라 카라스갤러리 관장은 이런 풍경이 반갑다고 말한다. MZ세대는 자신을 사랑하고 문화를 누리려는 열정이 큰 세대죠. 미술 시장도 폭넓어져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SNS를 비롯해 다양한 경로로 작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미술품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요. 눈여겨보던 작품의 판화가 출시되면 판화로 시작해 회화나 조각 컬렉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죠. 이런 층이 나이가 들어 빅 컬렉터가 되고 미술 시장의 다양성 또한 발전하리라 봅니다.
물론 우려도 있다. 어느 미술 관계자는 2016~2017년 미술 시장의 트라우마가 도래할까 염려한다. 당시에도 호황으로 새롭게 진입한 컬렉터가 많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유는 실력과 인정을 통해 저절로 작가가 유명해지기보다 가격 상승을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이가 많아지면서 창작 활동이 안정적이지 않은 작가를 양산했다. 점차 실망한 컬렉터가 작품을 내놓았지만 미술품은 주식처럼 되팔기가 어렵기에 한꺼번에 옥션에 출품되면서 작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선보인 아트 펀드를 통해서도 수익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년에 프리즈 아트 페어가 한국에서 열리면 외국 작가로 직거래가 쏠리는 현상 또한 발생할 수 있어 그 피해를 한국 작가가 입을 수 있다.
아트 페어마다 솔드 아웃을 일으키는 송인지 갤러리스탠 대표는 그때와 달리 지금의 미술 시장은 탄탄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생활에서 미술 저변이 확대됐다는 것. 물론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갤러리가 여전히 부족하고, 몇몇 특정 작가로 과도하게 몰리면서 거품이 끼기도 하죠. 이런 카오스를 거치면서 성장하리라 믿어요. 처음 시장에 진입한 분들은 아직 자기 취향이 정립되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거칠 수도 있지만 자연스레 좋은 변화를 이끌 거예요. 미술 시장에서 한번 구매하면 지속적으로 참여하곤 해요. 자신과 미술의 공감대가 형성되거든요.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 또한 미술 시장을 성장시킬 거예요. 1980년대 작가는 1990년대 작가와는 또 달라요. 1980년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두 면을 가지며 학업이라는 억압으로 사회 비판적 시각이 있지만, 1990년대는 대중과 더 결속되어 있고 국내외 문화를 자연스레 수용한 세대죠. 2000년생 작가가 나오면 미술 시장에 또 다른 풍요를 불러오리라 믿어요.
솔직히 나는 요 몇 달간 미술품 분할 소유를 시도하다 매번 실패했다. 작품이 공개되는 날 알람을 맞추고 앱에 들어갔으나 선착순에서 밀렸다. 여윳돈을 바라며 주식 투자처럼 접근한 데 죄책감이 들어 요즘은 안 한다. 이 또한 막힌 생각일지 모른다. 대신 요 며칠 밀레니얼 컬렉터를 만나며 소개받은 1990년대생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그에게 그래피티 작업할 벽은 어떻게 구했는지묻는 DM을 보내자 1시간 안에 답이 왔다. 데미안 허스트와 DM을 나눌 수 없는 입장에선 기쁜 일이었다. (V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