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와 80년대 조선일보사 파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프랑스에서 움텄던 독립운동의 본거지를 찾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나 중국같이 교민들도 없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선각자들은 힘들고 외로운 나날을 지냈다.1919년 1월 18일 파리에서 1차 대전 승전국을 포함해 27국 대표들이 모인 강화회의에 상해임시정부에서는 김규식(1881~1950)을 대표로 파견했다. 3·1 만세운동이 한창이던 3월 13일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은 '정부 자격이 아니면 참가할 수 없다'는 프랑스 정부의 통고를 받고 회의장에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