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인종과 종교, 인도네시아의 섬이 기른 작가들_미술 실크로드
인도네시아에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현대미술이 범람한다. 자카르타, 반둥, 욕야카르타 갤러리가 추천하는 작가 중에서 차기 미술계 스타를 발견할지 모른다.
아름다운 남국의 섬나라 인도네시아가 현대미술 강국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약 2억9,000만 명)이며, 1만7,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섬나라다. 그만큼 인종과 종교가 다채롭고, 태평양과 인도양의 정기를 받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현대미술을 창작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미술가도 많다. 2022년 매거진 <아트리뷰> ‘파워 100’ 1위였던 아트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걸린 대형 작품의 주인공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노골적으로 사회 비판 메시지를 드러내는 좀펫 쿠스위다난토(Jompet Kuswidananto), 2025년 송은에서 전시한 컬렉티브 트로마라마(Tromarama) 등이 그들이다. 신인 작가의 활약도 눈부시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에 가면 갤러리 투어를 해도 좋다. 꼭 방문해야 할 갤러리 8곳이 추천하는 젊은 미술가를 소개한다. 새로운 스타 작가를 예감할 것이다.
Roh, Jakarta
마루토 아르디(Maruto Ardi) 로(Roh)는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 최고의 갤러리다. 매년 아트 바젤 바젤·아트 바젤 파리는 물론,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실험적 전시를 하는 세컨드 갤러리 비 사이드(B-side) 운영도 시작했다.
로 갤러리가 추천하는 작가는 마루토 아르디(1992년생)다. 반둥 출신인 그는 기성품을 조립해 효용과 기능의 존재론적 본질을 탐구하는 개념 미술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책, 나사, 전선, 수평자가 자주 보이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젊은 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는 핸들러로 일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편법을 쓰고 DIY를 활용하는지 관찰한 경험에서 나온 작업입니다. 나사 책 연작을 계속 탐구하며, 이전 작품과 다른 시도를 계획하고 있어요. 사진 작업도 다시 시작합니다.”
마루토의 최신작은 책에 구멍을 뚫고 나사를 이용해 작품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작품 확장은 관람객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하려는 걸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작품을 통해 어떻게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무슨 도구를 사용하고,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가 관람객의 마음에 이미지로 그려지길 바랐다. 나사 책 시리즈는 작가가 아는 모든 기법을 다시 다듬은 결과물이다. 그가 도구에 관심이 많은 원초적 이유는 판화를 공부하면서 원본 이미지를 만들고 복제하는 데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용하는 책도 직접 만드는데, 일부는 중고 책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새로 만든다. “중고 책을 사용할 때는 안에 그 서적 관련 내용을 넣어요. 하지만 직접 만드는 책은 그저 빈 페이지를 쌓습니다. 책이라는 사물의 형태와 재료적 특성에 관심 있어요. 책은 작업하고 싶은 형태와 재료의 기준을 충족하고, 표지의 질감 있는 표면이나 이미지도 흥미롭죠. 그래서 저는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해요.”
마루토는 대량생산된 제품의 미학에 관심이 많다. 그 제품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지, 나아가 사물이 어떻게 일상에 스며드는지 지켜본다. 조만간 일본 작가 료타 야기(Lyota Yagi)와 자카르타에서 또 한 번 2인전을 여니 직접 확인할 수 있다.
ISA, Jakarta
알렉산더 세바스티아누스 하르탄토(Alexander Sebastianus Hartanto) 알렉산더 세바스티아누스 하르탄토(1995년생)는 2025년 <포브스>의 ‘30세 이하 아시아 유망주 30인’으로 뽑혔다. 할머니의 고향 자바에서 직조 기술을 익힌 작가는 전통 예술과 사진, 조각 같은 현대 미디어를 결합한 작품을 만든다. 그는 매사추세츠 예술대학(MCAD)에서 수학한 민족지학자(Ethnographer)이며, 2017년 윌리엄 데일리 어워드(William Daley Award)에서 예술사와 공예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직물 공예가이며, 현대미술가다.
세 가지 타이틀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할까? “민족지학, 직물 공예, 현대미술을 균형을 맞춰야 하는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동일하게 실천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민족지학은 삶의 맥락 속에서 관찰하고 경청하고 자신을 자리매김하도록 해줍니다. 공예는 노동, 반복, 재료에 대한 훈련을 통해 관찰을 뿌리내리게 합니다. 현대미술은 이런 경험이 성찰과 탐구로 표현되는 공간이 되죠. 여러 역할을 전환하기보다는 유동적으로 그 사이를 오갑니다. 각각의 역할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함께 학습하고 만들고 반응하며 지속적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그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고, 내면적으로는 미지의 것을 탐구하고 섬기는 삶의 방식 ‘사니(Sani)’를 실천하고 있다. “예술을 하려고 예술가가 된 게 아니라 어떻게 예술가가 되는지 배우면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자라면서 전통은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걸 알았죠. 인도네시아는 제작, 의식, 영성이 서로 얽혀 있어요. 이런 환경은 미지의 것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어린 시절부터 길러주었죠.” 그런 독특한 감성은 여전히 작업에 영향을 미치며 사니에 대한 연구도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사니는 예술을 사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인 봉사, 헌신, 윤리적 참여 행위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결론을 전달하기보다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현상에 관한 탐구에 동료와 관람객이 참여하고 질문하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재발견되는 미지의 진실과 만나는 사니와 일맥상통한다.
Galeri Ruang Dini, Bandung
카를라 아구스티안(Carla Agustian) “사진 촬영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회화를 완성합니다. 이런 방식은 내 작품의 사실주의적 경향과 관련 있어요. 직접 경험한 사실의 토대가 되는 세부 자료가 필요하거든요. 사진 촬영을 통해 빛과 분위기를 더 깊이 관찰할 수 있고, 그림으로 표현할 대상과 개인적인 연결 고리를 찾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회화로 옮겨진 사진은 복제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카를라 아구스티안(1998년생)의 대표 작품은 캔버스에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다. 예측할 수 없고 비밀로 가득 찬 인간의 감정과 내밀한 경험을 비롯해 작가 자신의 성찰을 그린다. 여성의 사회적, 개인적 지위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성의 관점과 삶의 경험이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색채 사용을 절제하고 흑백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정직하고 꾸밈없는 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목탄은 잘 깨지고 쉽게 번지며 흔적을 남기죠. 이런 특성이 작가에겐 도전 과제이고, 단순한 재료를 어떻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룰지 탐색하게 합니다. 흑백은 감정을 색채로 감춰야 할 필요가 없죠. 이런 제한 속에서 빛과 그림자, 침묵을 탐구할 자유를 찾는 겁니다.”
작업 과정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작품은 삶과 여정에 대한 궁극적 감사의 표현이다. 캔버스에 목탄으로 그린 그림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집중이 필요하다. 모든 자국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며, 수용의 미덕을 알려준다. 실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의 고요한 시간과 소박한 감정이 창작의 원천이다. 예술이 기쁨, 충족감, 삶의 여정에 함께하는 경이로움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작가에게 작품은 작업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 의심, 실수, 수용 행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에게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새로운 감성을 느껴보길 권한다. 자신처럼 관람객도 그동안 간과해온 것에 감사하길 바라면서.
Gajah Gallery, Jakarta
로싯 물야디(Rosit Mulyadi) 로싯 물야디(1988년생)는 고전 회화를 알루미늄판에 그린 연작으로 이슈가 되었다. 거장의 그림을 물감과 텍스트로 왜곡하고 가리는 방식은 인터넷의 리믹스 문화와도 연결할 수 있어 흥미롭다. “알루미늄판 연작은 현실이 시뮬라크라(Simulacra, 인터넷과 휴대폰, 텔레비전 같은 현실을 모방한 가상 세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구상했어요. 21세기에는 많은 정보가 다양한 의도와 내재된 권력 역학에 따라 종종 은폐되고 왜곡되고 과장돼요. 심지어 우리는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같은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모호하고 변형 가능한 현실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다. 구부리고 휘고 접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알루미늄판이 이런 현실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매체였기에 캔버스 대신 선택했다.
그는 어린 시절 이슬람 기숙학교인 페산트렌(Pesantren)에서 수학했다. 이 학교는 이슬람교에 대해 가르치면서 예술을 매개체로 사용했고, 그는 종교적, 사회 문화적, 예술적 차원의 교차에 깊이 빠져들었다. 덕분에 종교를 선택한 친구들과 달리 그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전 회화를 작품 소재로 차용한 이유는 인간의 비극과 갈등은 겉모습과 형태만 다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갈등의 본질과 문제의 핵심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등장인물, 문제의 형태, 표현 방식만 바뀔 뿐이죠. 과거의 거장은 인간을 표현했지만, 현대적 맥락으로 내가 덧붙인 속성은 인물 사이 갈등을 야기합니다. 사람은 그대로지만 양상은 다릅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모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에 진지함과 풍자가 공존하는 것은 디지털 문화가 아이러니와 유머 같은 감정적 공감을 이용해 긴장과 모순을 처리하고, 디지털 세상에서 이해 가능한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도록 이끄는 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Ara Contemporary, Jakarta
마르 크리스토프(Mar Kristoff) 24세에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두 번 열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는 드물다. 2025년 아라 컨템포러리에서 마르 크리스토프(2001년생)의 전시 <침입자(Interloper)>를 보았을 때, 20대 초반 작가라고 짐작하지 못할 만큼 성숙한 작품 세계에 다들 매료되었다. 마르는 발리 출신이며, 개인적·사회적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를 선보여왔다. 개인전에서는 대폭 확장된 세계로 조각, 영상, 사운드까지 선보여 호평받았다. 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유품에서 시작된 전시는 사진과 회화의 한계, 기억과 시간의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아트족(ArtJog) 2025에서 열린 첫 개인전 <달리아 23(Dahlia 23)>은 어릴 때 살던 집의 건축적 기억을 현재 관점에서 되짚어보는 의도였어요. 반면에 <침입자>는 개인적인 자료와 발견된 재료 사이의 긴장감과 저작권에 대한 의문에 집중했죠. 공통점은 모두 가족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음악도 그의 작업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테너 색소폰 연주자였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늘 음악을 틀며, 작품 제목을 곡명에서 차용하기도 한다. 모든 음악에 개방적이지만 재즈를 편애한다. 모달 재즈, 프리 재즈, 스피리추얼 재즈, 비밥이 사고방식과 작업 방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책, 영화, 대화, 다른 예술품 감상, 일상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한국인이 자기 성찰적 시각을 갖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타인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은 진정성과 공감이 필요한 시대니까요. 올해는 런던의 비영리 미술 기관 가스웍스(Gasworks)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국내외에서 여러 전시를 엽니다.”
Nonfrasa Gallery, Bali
마하라니 만카나가라(Maharani Mancanagara) 할아버지의 일기와 정치 망명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사회 정치적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가다. 마하라니 만카나가라(1990년생)는 섬세한 목판화와 대규모 설치를 통해 침묵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역사의 아픔을 치유와 돌봄으로 전환하는 관점이 인상적이다.
“할아버지 일기를 통해 역사도, 기록 보관소에 담긴 지식도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록은 무엇이든 언제나 선택의 결과죠. 어떤 것은 보존되고, 어떤 것은 지워집니다. 남은 것은 ‘이야기’가 되지만, 그것이 완전한 진실은 아닙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잊었고, 무엇을 보지 않도록 강요받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작품 감상은 기록 보관소의 공백, 역사의 침묵, 우리가 의심 없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마주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 판화,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며, 특히 목재를 자주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많은 부분은 침묵하거나 단편화된 역사를 다루는데, 나무는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와 공명하죠. 주로 공장이나 중고 목재상, 다른 작가에게서 수집한 재활용 목재를 사용하고요. 그 표면에는 노동, 풍화작용, 인간의 흔적이 담겨 있기에,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할 때면 이미 새겨진 것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재활용 목재를 사용하는 것은 과거를 존중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가 뿌리내릴 장소를 마련하는 방법이죠.”
그녀에게 아카이브는 최종 참고 자료가 아니라 반박하고 도전할 수 있는 실체다. 그래서 집단 기억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미시적 관점을 담은 공동체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청은 일종의 연구가 된다. 앞으로 전시를 넘어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배우려 한다. 귀담아듣고, 기존 것을 버리고, 다시 연결하는 여정은 그녀의 작업에 필수적이다. 생활 속 작은 디테일이 기록 보관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Ace House Collective, Yogyakarta
레스투 라트나닝티아스(Restu Ratnaningtyas) “예술이 삶의 힘든 시기를 견디게 했기에 작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창작을 통해 온전하고 의식 있는 인간으로서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술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레스투 라트나닝티아스(1981년생)의 작품은 데뷔 이후 개념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재료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녀가 사용하는 아이디어, 접근 방식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드로잉, 회화, 패브릭 콜라주,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신체, 젠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특정 집단의 소외 등 사회문제를 탐구하기에 자신의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 대부분은 실제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작품은 내면의 모습과 개인적인 불안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과 집단적인 경험을 담기도 하죠. 또 다른 작품은 사회적 조건과 구조에 대한 비판을 드러냅니다. 올해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더 깊이 있는 예술적 탐구를 이어갑니다.”
초기에는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받았고, 최근 몇 년간은 인터넷, 일상의 사건과 예술, 패션,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인본주의 사이의 복잡한 상호 연결성을 연구하고 있다. 매일 소비하는 것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묘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연약하고 단순한 종이와 천은 작품 실천의 또 다른 핵심 요소다. 그림의 선(Line)은 정직하며, 붓으로 표면을 가로질러 움직이면서 자신의 의심과 불안을 드러낸다.
제16회 샤르자 비엔날레(2025년)에서는 설치 작품 ‘나의 조상은 뱃사람이었다(My Ancestors were Sailors)’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오르골, 드로잉, 회화, 엽서, 커튼, 도자기 등 다양한 오브제와 기념품을 통해 여성 어부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아늑한 설치 작품이다. 생태계 파괴와 빈곤의 위협에 직면한 여성 어촌 공동체에 주목한 것. 공동체 ‘푸스피타 바하리(Puspita Bahari, 바다의 꽃)’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바다에서 일하는 것을 막는 사회적 금기에 맞서 싸우며, 레스투는 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Srisasanti Gallery, Yogyakarta
리피 웡소(Liffi Wongso) 자카르타에는 컬렉터가 있고, 물가가 저렴하고 미술대학이 있는 욕야카르타와 반둥에는 아티스트가 있다. 욕야카르타를 대표하는 스리사산티 갤러리의 추천 작가는 리피 웡소(1997년생)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작품을 보며 근심을 잊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요정이라고 마냥 행복해 보이는 건 아니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Faeroe Islands)의 전설에 나오는 엘프를 그리는데, 엘프가 ‘숨겨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엘프는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존재입니다. 이런 개념은 내 작품과 깊이 공명합니다. 나는 간과되는 것, 연약한 것, 또는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 소녀는 직접적 자화상은 아니지만, 감수성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반영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의 대리인에 가깝죠.”
그녀는 맑고 투명한 수채 그림으로 인도네시아 미술계에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자연 재료를 이용해 직접 물감을 만들고 있다. 작업실의 붓꽂이가 컵과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물감이 해롭지 않다면 작품 속 식물을 비롯한 생물에 연결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 그래서 꿀과 꽃잎을 이용해 물감을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고, 1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먹어도 안전한 수채 물감을 만들었다.
“천연 안료는 더 부드럽고 은은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색조를 만들어냅니다. 천천히 작업하고 불완전한 것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죠. 반대로 화학 물감은 통제되고 일관된 느낌을 주어 선명한 대비와 명확한 의도를 표현할 수 있게 합니다. 천연물감은 연약함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드러내는 반면, 화학 물감은 구조와 명확성을 강조해요. 두 재료 사이의 흥미로운 긴장감과 대비가 최근작의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녀는 속도를 늦추고 고요한 감정과 연약한 상태, 확신과 의심 사이에 존재하는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관람객이 자신의 취약성과 부드러움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올해도 천연 안료에 대해 탐구하면서 더 몰입감 있는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