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의 거장, 도미니크 로피옹의 서울 후각 기행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에게서 그가 만든 향을 맡는 건 행운이다. 논픽션의 절친한 친구 도미니크 로피옹의 서울 후각 기행.
단언컨대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처럼 화려하고 찬사받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 향수 업계의 거장은 드물다. 지난 40년 동안 이 마스터 퍼퓨머는 우리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마니아층을 사로잡는 향수를 창조하며, 럭셔리 퍼퓸 하우스의 러브콜을 받는 향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왔다. 비록 그 이름이 업계 외부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그의 향수를 한 번쯤 접해봤거나 소유해본 적 없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향은 이 남자가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방식이다. 세상 그리고 자신과 더 잘 소통하는 방법인 것이다. “향수는 저에게 하나의 건축물과도 같습니다. 각 노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때까지 다듬죠. 메시지가 또렷해지고 하나의 조화로운 호흡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집니다.” <보그>는 이 전설적인 조향사의 후각적 기억과 창작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논픽션 사이닝 이벤트로 서울 삼청동에 도착한 도미니크 로피옹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논픽션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나요? 이 브랜드의 어떤 점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나요?
우린 파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오도라마 시티’ 조향을 위한 미팅이었는데, 차혜영 대표가 향에 얽힌 이야기와 이미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국 제품까지 직접 가져와 함께 시향한 기억이 납니다. 기억과 향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무척 인상 깊었죠.
논픽션의 세 가지 향을 창조했습니다. 각 향수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최종적으로 향수로 완성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원료가 지닌 익숙한 이미지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친숙하다고 여기는 향 속에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결이 존재하니까요. 구조를 세운 뒤에는 시간을 충분히 두어 재료가 서로 스며들고 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가도록 지켜봅니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품 출시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나요?
기간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비교적 빠르게 형태를 갖추는 반면, 어떤 작업은 더 많은 시도와 숙성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속도를 정해두기보다 향이 요구하는 리듬에 귀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완성의 순간은 조향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향이 스스로 알려주거든요.
‘오도라마 시티’ ‘브와 드 일랑’ ‘아이리스 콘크리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은 무엇이고,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나요?
각 향수마다 다른 챌린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오도라마 시티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위해 수집된 수백 가지 향의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그 집합적인 초상을 하나의 흐름, 하나의 에너지로 번역하고 싶었죠. 스파이스와 우디 노트는 풍경의 생동감을, 유칼립투스는 한국 목욕 문화를, 투베로즈는 위로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온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게 한라산이 상징하는 강인함과 평온함 역시 자연스럽게 이 향에 녹아들었습니다. 브와 드 일랑은 일랑일랑을 중심에 둔 작업이었습니다. 관능성뿐 아니라 거의 동물적인 깊은 결까지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블론드 우드로 현대적인 느낌을 더하고, 투베로즈 앱솔루트로 입체적인 질감을 완성했습니다. 아이리스 콘크리트는 세계적인 천연 향료 기업 라보라투아 모니크 레미(Laboratoire Monique Rémy, LMR)의 고품질 아이리스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만들었으며, 파우더리하면서 우디하고 캐러멜 향을 약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암브레트와 머스크를 더해 피부에 스미는 듯한 감각을 부여하고, 소량의 갈바넘으로 산뜻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습니다.
2024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 시장이 점점 더 대담하고 세련된 향수에 끌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이런 결론을 도출했나요?
한국은 예술, 디자인,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선구적이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향수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대담하고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 향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산뜻하고 자연을 닮은 향도 사랑받지만, 전반적으로는 창의적인 시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장입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논픽션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논픽션은 아름다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과 감정을 중심으로 컨셉을 만들어가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플라워 컬렉션부터 오도라마 시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최고 품질의 원료와 명확한 감정적 의도를 바탕으로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이런 일관성과 창의성이 논픽션의 가장 큰 힘이죠.
미래에 논픽션과 어떤 비전을 갖길 꿈꾸나요?
앞으로도 논픽션과 함께 진정성 있는 향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분명한 시그니처를 지니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들어 깊은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 말이죠.
지난 2월 사이닝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당신을 웃게 한 인물이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제게 가장 감동을 주는 순간은 조향 과정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건네는 분들을 만날 때입니다. 하나의 포뮬러가 어떻게 피부 위에서 감정으로 변하는지 궁금해하는 대화는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파리에서 서울까지 12시간 정도 걸립니다. 기내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주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합니다.
서울의 향을 한 단어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에너지’. 서울은 속도가 빠르면서도 깊이 사유하는 도시입니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 서울만의 리듬을 만들어내죠.
서울 여행을 앞둔 친구에게 어떤 조언을 할 건가요?
많이 걸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사소한 디테일을 통해 서울이 가진 이야기를 스스로 발견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세요. 향수는∙∙∙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우리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며, 현재에 머물게 하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새로운 향을 만들 때 염두에 두는 것은∙∙∙
균형과 조화입니다. 향이 충분히 숙성되어 하나의 메시지로 또렷하게 느껴질 때까지, 각각의 노트가 의도한 것을 정확히 전달하도록 끊임없이 다듬습니다. 그렇게 전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향이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논픽션 향수를 뿌릴 때, 저는∙∙∙
그들이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새로운 상상의 여정이든 추억을 떠올리는 익숙한 감각이든 상관없어요.
당신이 이룬 업적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를 꼽아야 한다면, 포뮬러가 스스로 균형을 잡고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걷듯’ 살아 움직이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밀어붙였던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원료가 각각 목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긴장감으로 조화를 이루는, 그 미묘한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죠. 그건 특정한 하나의 향수를 의미한다기보다 톱 노트부터 드라이 다운까지 어코드가 흔들림 없이 이어지도록 수백 번의 시도를 반복하는 훈련과 집요함 자체가 제게는 가장 의미 있는 성취입니다.
지금까지 들은 조언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배움을 멈추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좋은 향수를 연구하세요, 그게 바로 최고의 스승입니다.
당신이 저지른 실수 중 가장 훌륭한 실수는 무엇이며, 그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한때는 ‘과용’을 분명한 실수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그 안에는 과잉도 결핍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원료를 꼭 필요한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막연한 경험치를 따르기보다 포뮬러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도록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결국 답은 정해진 공식이 아니라 그 조합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봅니다.
조향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할 건가요?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열정을 잃지 마세요. 음악을 비롯한 예술, 음식 등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통해 창의력이 자라니까요.
다른 조향사와 차별화되는 당신만의 ‘한 끗’은 뭔가요?
꽃이나 원료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상상과 감정적 울림을 끌어내는 편이죠. 제 직업은 마음과 피부의 상호작용, 감각적인 경험, 자유로운 표현에 이끌립니다.
조향사로 일하는 당신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가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나요, 아니면 그대로 유지되었나요?
절제와 집중입니다. 저는 작업 공간을 아주 미니멀하게 유지합니다. 작업 중인 바이알, 포뮬러 시트, 시향지, 몇 권의 책 정도로요. 미니멀한 환경이지만, 복합성에 대한 탐구는 결코 단순해지지 않죠.
어떤 향수가 좋은 향수일까요?
분명한 아이디어가 있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시그니처가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향수라고 정의하고 싶군요.
가장 좋아하는 향은 무엇인가요?
저는 오 드 코롱을 사용합니다. 작업하는 동안 다양한 냄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은은한 후광 같은 존재죠. 그리고 제가 편애하는 개인 정원에는 장미, 샌들우드, 수선화, 투베로즈, 우드가 있습니다. 이 모든 향은 자연 그 자체로 완성되는 하나의 ‘포뮬러’라고 느껴지는 원료로, 끝없이 찾게 되는 재료랍니다.
최근 구입한 향기 관련 제품이 있나요?
최근 집에서 향을 즐기려고 작은 침향나무 조각을 구입했습니다. 태우거나 디퓨저로 사용하며 공간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을 즐기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냄새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나쁜 냄새’는 없다고 여깁니다. 파리 지하철 냄새조차 제 후각적 기억 속에는 의미 있는 향으로 자리하니까요. 다만 한여름 뉴욕 거리에서 맡게 되는 쓰레기 냄새를 유쾌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군요.(웃음)
모든 소지품을 두고 단 세 가지 향수만 들고 떠날 수 있다면 뭘 고를 건가요?
세 가지만 가져간다면, 저는 명료함을 지닌 훌륭한 코롱 하나, 끝없이 다양한 면을 지닌 특별한 장미,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담아내는 투베로즈를 선택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 내면을 표현하는 아키타이프와 같아요. 이름보다는 이들이 담고 있는 구조와 성격이 제겐 더 중요합니다.
조향사가 안 됐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건축가가 됐을 것입니다. 제게 조향은 언제나 ‘움직이는 산술’처럼 느껴졌습니다. 증발을 계산하고, 분자를 계량하며, 숫자를 감정으로 전환하는 일. 구조를 설계하고 균형을 맞추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두 영역은 매우 닮았습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