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단순하지 않다, 직장인들이 사표를 못 쓰는 이유 5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걸치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현실과 타협한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람이 버거워도,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은 삶을 굴러가게 한다. 월세와 관리비, 보험료, 대출 이자까지 자동이체로 묶인 숫자들 앞에서 사표는 감정보다 계산의 문제가 된다. 월급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생활의 기반이다. 기반을 스스로 흔드는 선택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만을 품은 채로도 안전벨트를 푼 채 달릴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퇴사는 순간이지만, 공백은 시간이다. 다음 직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몇 달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이력서에 남는 빈칸, 면접에서 반복될 설명, 괜히 작아지는 자신감까지. 채용 시장은 냉정하고, 기회는 타이밍을 탄다. 지금 자리를 놓았을 때 더 나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마지막 확정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유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게 느껴져서다.
회사는 업무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함께 밤을 샌 팀원, 나를 믿고 프로젝트를 맡긴 상사, 쌓여온 시간과 정이 얽혀 있다. 퇴사는 단순한 이탈이 아니라, 그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다. 특히 업계가 좁을수록 평판은 자산이 된다. 괜히 무책임해 보이지 않을지, 팀에 부담을 남기는 건 아닐지 고민이 깊어진다. 개인의 선택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인 파장이 뒤따르기 때문에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그 환경에 적응해 있다. 출근 시간, 업무 방식, 상사의 성향까지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예측 가능함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묘한 안정감을 준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평가받고,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 긴장감이 두렵다. 그래서 지금의 불만을 감수하는 쪽이 덜 위험해 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번 시즌만 지나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을 번다. 하지만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개인의 인내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버티는 동안 소모되는 건 결국 자신의 에너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결단보다 유예를 택한다. 당장 흔들리는 것보다, 조금씩 닳아가는 쪽이 덜 무섭게 느껴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