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글리터의 시대, 우리가 찾는 진짜 ‘반짝이’!
‘클린 걸 메이크업’의 유행으로 주춤하던 글리터의 시대가 돌아왔다.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반짝이의 매력.
나는 올리브 그린이 ‘포인트 컬러’가 될 수 있고, 풀 메이크업에는 블러셔, 마스카라, 브로우 젤과 3분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파운데이션은 스물두 살 이후 써본 적이 없다. 이중 세안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찰리 XCX의 <Brat> 앨범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 없다.
그래서인지 2002년 즈음의 패리스 힐튼이 떠오르는 파티 걸 메이크업(실버 드레스와 번진 듯 연출한 블랙 섀도. 사진 보면 알 거다)이 주의 산만한 틱톡커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디올과 맥퀸, 크리스찬 시리아노 같은 브랜드가 최근 쇼에서 이런 스타일을 앞세웠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럼에도 금세 납득해버린다.
멋지다고 여긴다. 걔네한텐 어울리겠네.
어느덧 서른세 살이다. 아이도 있다. 로우 라이즈 진, 라부부 인형 같은 트렌드가 유행했다 사라져가는 모습을 부처처럼 앉아 지켜보고 있다! 젠지가 아이라인 문신을 받으며 울든 말든 알 게 뭔가. 그들이 손수건으로 입생로랑 뷰티 ‘래쉬 클래쉬 익스트림 볼륨 마스카라’ 찌꺼기를 닦아내고, 운모를 갈아 만든 파우더를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도록 내버려두자. 나도 한때 그랬다. 이제 그들 차례다.
나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때 글로시한 밤색 립을 바른 채 라자냐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 두 명이 눈에 띈다. 둘의 입술은 흡혈귀처럼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내 피치 컬러 립 크림에 짜증이 난다. 마지못해 바른 듯 보인다. 무기력한 느낌이다. 식당 화장실에 갖다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른다.
10년 넘게 대세였던 내추럴 메이크업에 대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찰리 XCX 팬들은 ‘케어베어’ 같은 현란한 색의 섀도를 칠하고 아이라이너로 번진 듯한 눈매를 연출한다. 입술은 시나몬 토스트 크런치 시리얼에 우유를 부은 듯 반짝인다. DJ 크리스틴 바릴리(Kristine Barilli)는 컨투어링 메이크업은 이제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한다(바릴리가 내게 이메일을 보낸 시각은 자신의 근무시간인 새벽 1시 20분이었다.). 파티에 앞서 바릴리는 야나 스킨케어(Yana Skincare)의 페이스 오일을 얼굴에 톡톡 두드려 피부를 “외설적일 정도로 촉촉하게” 유지하고, 맥 ‘실키 매트 립스틱’과 펜슬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 제품이 지워지지 않아 좋다고 한다. 바릴리는 반짝이고 윤기 있는 글로시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여성들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
“패션의 추는 대담한 색상과 텍스처, 재미를 향해 다시 움직이고 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네사 마이릭스(Danessa Myricks)가 말한다.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는 그녀의 다네사 마이릭스 뷰티(Danessa Myricks Beauty)는 컬트적인 ‘컬러픽스 스틱스’ 듀오를 내놓는다. 그녀는 오랫동안 특별한 날이나 기념일을 위한 메이크업에 매료되었다. 코로나19 이후 파티가 주춤해졌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 기표는 돌아왔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새롭고 당당한 느낌도 있죠.” 마이릭스가 말한다. “글리터 안에 자유가 있는 거죠.”
자유, 멋진 말이다. 달력을 봤다. 일주일 후에는 파리로 이사하는 친구 에린을 배웅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가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오차드 스트리트의 보헤미안 스타일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걸 아주 좋아하는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했다. 브루클린의 인기 클럽 하우스 오브 예스(House of Yes)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다음 달이 가기 전에 글리터 섀도를 바를 만한 그럴듯한 구실은 이것 말곤 없을 듯하다. 그래서 꼭 가겠다고 답했다.
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몇 시간 전, 디올의 글로벌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누아 뒤몽(Benoit Dumont)이 찾아와 지속력이 뛰어난 아이라이너 활용법을 알려주고 실버 섀도가 밤까지 지워지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메이크업 수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잘 그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뒤몽은 투표용지의 체크용 타원에 색칠하듯 크리스챤 디올 뷰티 ‘디올쇼 온 스테이지 크레용 #099 블랙’을 눈두덩에 몇 번 그은 뒤 문지르며 말한다. “정확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바비 브라운의 글로벌 아티스틱 디렉터 한나 머레이(Hannah Murray)도 뒤몽의 말에 동의한다. “이런 메이크업의 불완전함 자체가 섹시하고 관능적인 느낌을 주죠. 요즘과 아주 잘 맞는 느낌이에요.” 15단계의 ‘언더페인팅(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전에 컨투어, 블러셔, 하이라이터와 다른 색조 제품을 먼저 발라 지속력을 높이는 기법. 주로 크림 타입을 사용한다)’ 루틴과 파운데이션 ‘베이킹(베이스 메이크업을 마친 얼굴에 투명 파우더를 두껍게 얹은 후 5~10분 뒤 잔량을 털어내 매끈한 피부를 완성하는 기법)’의 장점을 극찬하는 릴스 영상에서 한발 멀어진 태도다. 글로시 메이크업에는 손가락과 섀도 스틱을 사용한다. 우버가 오기 전 10분, 아니면 화장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만으로 충분하다.
뒤몽은 거의 40분을 들여 나를 완전히 변신시킨다. 거울이 달린 콤팩트를 열어 살짝 들여다보니 거울에서는 마거릿 킨(Margaret Keane)의 그림 속 인물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두려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눈썹과 눈, 입술,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커다랗게 보여 눈길이 갔다. 키가 커지고 몸도 날씬해진 기분이 들면서 이런 내 모습을 누가 볼까 봐 겁이 난다. 남편이 9개월 된 아들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저 여자가 대체 누구라니!”
‘저 여자’는 약속에 늦은 탓에 세상에서 가장 탐나는 파티 의상을 제작하는 원 오브(One Of)의 상의와 럭셔리 여성복 브랜드 칼마이어(Kallmeyer)의 블랙 진을 걸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친구 모니카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시내로 향한다.
대담해진 기분에 어느 때보다 크게 입술을 그린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두 번 방문한 뒤 손님이 너무 많아진 레스토랑 코너 스토어(The Corner Store)에 가까스로 저녁을 예약하는 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성형수술 한 사람처럼 아래층 도어맨들을 슬쩍 지나쳐 아파트 입구를 벗어난다. 기차 안에서는 선글라스를 낀다. 식당에 들어갈 때도 선글라스는 벗지 않는다. 밖은 흐리고 인도는 젖어 있는데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 내가 드럼 소리를 내며 선글라스를 벗자, 모니카가 내 모습을 보고 숨을 헉 들이켠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식당에는 나만큼 색색의 컬러로 치장한 여자들이 가득하다.
바에는 어둡고 반짝이는 립스틱을 바른 사람이 셋, 햇볕에 탄 오팔빛 섀도를 바른 사람이 둘 있다. 와인 한 잔을 주문하려는 순간 모니카가 나를 막는다. “색은 네 얼굴에 있는 걸로 충분해.” 우리는 마티니를 주문한다.
1시간이 지나자 대화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내가 걸어 다니는 스팽글이라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한 게 처음은 아니다. 코너 스토어가 아니라 글리터로 가득한 세상 얘기다. 내 약혼 파티 날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지 거스타인(Suzy Gerstein)은 내게 사인펜처럼 보일 정도로 강한 메탈빛의 코발트 블루 아이라이너를 사용해 메이크업을 해주었고, 나는 거기에 프라발 구룽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는 촘촘히 박힌 비즈 장식이 너무 화려해 서 있으면 짤랑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밤새 그곳을 돌아다니며 조금은 유명해진 듯한 특별한 기분을 만끽했다. 또 한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파티에서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날 본 메이크업 아티스트 리즈 래시(Liz Lash)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내 얼굴에 반짝이는 연보랏빛 섀도를 쓱쓱 발라주었다. 무척 맘에 들었다. 코너 스토어에 있는 지금 내 자세는 더 이상 늘어진 듯 구부정하지 않다. 차려입고 즐거움을 만끽한 두 번의 밤. 다시 이런 기분을 누릴 일은 없을까? 그 뒤 맥의 글로벌 시니어 아티스트 데니 아담(Deney Adam)은 이렇게 말한다. “메이크업은 단지 피부에 바르는 제품이 아닙니다. 느낌이죠.” 그렇다. 나는 지금 눈부실 정도로 황홀한 기분을 느낀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