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맛.
갯장어는 원래 여름이 철이에요. 조금 지나면 지방질이 쫙 빠진다고 하죠. 금방 꺾여요. 그런데 요즘 기후가 변하면서 가을이 여름의 연장처럼 되다 보니 얘도 점점 나오는 시기가 길어지더라고요. 지금부터 10월 중순까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11월 초까지도 먹을 수 있습니다.
얘는 삼천포에서 왔어요. 갯장어는 일본어로는 ‘하모’라고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얘를 먹는 문화가 거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착취해갔다고 해야 하나, 여수와 남해안 쪽 갯장어와 새조개가 (질이) 좋아서. 특히 일식 요리의 근간인 교토에서 한국산 갯장어를 지금도 제일 높게 칩니다.
대중적으로는 민물장어와 ‘아나고’라고도 하는 바다 장어를 많이 드시는데 갯장어는 이 두 장어에 비해서는 뼈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두껍고 날카롭습니다. 대신 다른 장어 특유의 흙냄새나 향이 전혀 없어요. 아주 담백하고요. 그래서 대부분 굉장히 얇게, 정말 비칠 정도로 회를 떠서 샤부샤부로 먹습니다. 손질이 아주 까다로워서, 저도 일본에서 이 갯장어라는 재료를 써보기 시작했지만, 레스토랑 오픈하고 1~2년 정도는 혼자 맨날 연습만 하다가 3년쯤 되어서야 이제 좀 자신 있다 싶어 그때부터 철마다 꾸준히 쓰고 있어요.
날씨가 선선해지면 저는 뼈를 다 손질한 갯장어를 숯불에 구워서 내거나 즉석에서 수프를 붓고 바글바글 끓여 냅니다. 칡 전분을 붓으로 가볍게 묻힌 다음 육수에 살짝 포칭 Poaching하면 전분이 싹 코팅되면서 마치 타피오카처럼 굉장히 쫀득쫀득하면서 흰 살 생선 특유의 맑은 맛이 나요. 선선해지기 전에는 껍질만 숯에 살짝 익히고 살은 회인 상태로 여러 제철 채소와 과일, 저희만의 오리지널 드레싱을 곁들여 내기도 하고요. 자연이 참 신기한 게 비슷한 철에 나오는 애들끼리 합치면 희한하게 맛있어요. 이건 자연의 섭리예요. 은행도 어울리고, 청유자도 어울리고, 따뜻한 갯장어 뼈 수프에 마지막에 송이를 탁 넣으면 그게 가을 맛이에요.
셰프가 갯장어를 즐기는 방법
회로 먹는다. 폰즈에 무를 많이 갈아 넣고 찍어 먹는다. “저는 가장 심플하게 먹는 게 좋아요. 회로 먹습니다. 무를 굉장히 많이 갈아 넣은 폰즈를 찍어서요. 거기에 청유자를 갈아 넣어도 맛있고요. 갯장어의 섬세한 흰 살 맛이 묻히지 않도록 산미만 살짝 가미해서 먹으면 맛있죠.”
버섯은 아마 대부분의 셰프가 좋아할 거예요. 맛이 뉴트럴 Neutral하다 그럴까요? 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고, 여러 맛을 낼 수도 있고, 소스나 스톡처럼 베이스로 쓰기가 좋아요. 맛을 잡아주면서도 변주가 가능해서 다양하게 쓰죠. 그런데 저는 가을 말고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국물을 낼 때도 건표고를 넣으면 맛이 편하게 나는데, 그냥 다른 계절에는 조금 제하고, 대신 가을에 한 접시 자체를 버섯으로 ‘파아악’ 내놓아요. 온 힘을 다해서. 가을 하면 버섯, 하베스트 Harvest,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니까.
지금 담아둔 버섯은 (12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송이, 갈색 민가닥버섯, 느타리인데 조그마한 느타리, 팽이버섯, 골드팽이버섯, 목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하얀 민가닥버섯, 그리고 일반 새송이보다 조금 작은 새송이버섯, 표고버섯이에요. 이거 말고도 좀 더 희귀한 버섯 한 서너 가지를 더 써요. 표고버섯 같은 경우는 치킨 쥬(Jus, 끈적끈적할 정도로 스톡을 확 졸여놓은 것)에 넣고 6시간 정도 쭉 익혀요. 그러면 얘가 그 치킨 쥬를 다 먹어서 고기 같아져요. 버섯을 먹고 고기 같다고 말하는 건 진짜 고기 같아서예요. 느타리는 기름에 넣어 저온에서 오래 익히는 콩피 Confit 방식으로 올리브 오일에 허브류를 넣어서 조리하면 허브 향이 들면서 맛있고, 양송이는 삭혀서 쓰기도 해요. 유산균 발효해서 삭히면 물이 나오거든요. 그 물에 크림이랑 넣어서 소스를 만들기도 하고. 최소 7종의 버섯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리한 다음 접시 하나에 딱 놓죠. 그래서 (주방에서 요리 중인 셰프들을 가리키며) 이 친구들이 되게 싫어합니다.(웃음) 손이 너무 많이 가요.
그래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가장 좋은 재료가 가장 맛있다고 하잖아요. 그 재료가 가장 맛있을 때는 제철이니까. 멀리서 찾기보다 가까이에서 찾는 것이 맛있고요. 가을 버섯 디시 이름은 ‘버섯 메들리 Mushroom Medley’예요.
셰프가 버섯을 즐기는 방법
잎새버섯에 버터를 발라서 숯불에 구워 먹는다. “기가 막힙니다. 일본에서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버섯인데 일본어로는 마이다케(춤추는 버섯)라고 해요. 버터 발라서 숯불에 구워 먹으면 장난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버섯이든 이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버섯의 최고의 친구는 버터, 간장, 마늘. 이 세 가지의 조합이 제일 잘 어울려요. 버터에 볶다가 소금이나 간장 살짝 넣고 마늘 넣어서 드셔보세요. 간마늘이든 슬라이스한 마늘이든 자유로이. 최고입니다.”
한 7, 8년 전쯤 12월에 인천 사는 친구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간재미를 해주셨어요. 집 마당에서 일주일 정도 말린 다음 쪄두었다가 주신 건데 그 감칠맛이 참 좋더라고요. 간재미는 아가미 쪽을 제거하지 않으면 암모니아 냄새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 손질을 아주 잘하셨더라고요. 그걸 맛보고 드라이 에이징 냉장고를 한 대, 두 대씩 사게 됐어요. 지금은 여섯 대 있어요. 보통 9, 10월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어획된 생선들을 내장과 피를 빼고 손질한 다음 건조만 시키는 거예요. 드라이징하면 천천히 굳고 마르며 수분이 겉에 계속 코팅되죠. 예전에는 이렇게 건조시킨 생선을 뜯어 먹기도 하고 그랬대요. (이런 식문화가) 지금은 통영 정도에만 남아 있고.
저는 식자재에 대해서는 다 물어봐요. 이게 어떻게 나한테 들어왔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에서 자란 우럭이라 하더라도 물어봐요. “뭐 먹고 자란 거예요?” 먹고 나면 속이 편해야 하니까요. 속이 편한 다음 날은 붓지도 않아요. 벌꿀도 직접 양봉해보면 고지 700미터, 600미터마다 꿀맛이 다 달라요. 청학동 800미터 고도에서 딴 고사리도 평상에 말리느냐, 건조기에 말리느냐에 따라 색도 맛도 향도 달라요. 그런 걸 많이 보고 있어요. 저를 두고 거친 한식을 한다고도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친 게 아니라 안전하게 요리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 작게 하고 있는 원물 연구를 4년 후쯤에는 원물연구소로서 더 넓힐 거예요. 그때는 한국의 웬만한 젓갈, 된장, 간장을 우리 스타일로 직접 만들고, 숙성, 발효에 대한 맛을 더 연구할 거예요. 우리나라의 참깨, 들깨 품종이 수십 종이라는 거 아세요? 충청도의 들샘이라는 들깨 품종으로 만든 들기름을 일본에서는 이미 발 백선에 좋다고 연구돼서 약으로 써요.
이 대삼치는 남해와 동해에서 왔어요. 드라이 에이징시키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넘었어요. 지금부터 먹기 좋은 때예요. 숙성 회처럼 내려고요. 그런데 이게 호불호가 갈려요. 어쩔 수 없어요. 자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우리 가게는 안 맞아요.(웃음) 맛이 삼삼하지도 않은데. 씹을수록 고소하죠.
셰프가 삼치를 즐기는 방법
숙성 회로 즐긴다. “9월과 10월에 맛있는 삼치나 조기를 굽거나 찌고 싶을 때는, 생선 피와 내장을 제거한 다음 녹차 우린 물에 하루 담갔다 건져서 물기를 제거하고 3일 정도 드라이징시켜요. 그래야 껍질의 흙냄새가 사라져요. 그다음 굽거나 쪄 먹으면 아주 쫀득하고 맛있습니다.”
가을 전어는 집 나간 사람도 돌아오게 한다는데 말이 필요 없죠. 전어는 뼈째 썰어 세꼬시로 먹는 게 최고예요. 그런데 가을 전어가 기름이 많단 말이죠. 약간 느끼할 수 있죠. 그걸 싹 빼줘야 하니까 저 친구(일식 조영두 셰프)는 세꼬시를 시소에다 묻혀서 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여운이 길게 갈테니까 저는 (중식 스타일로) 튀김으로 내면 괜찮겠네요. 탕수같이 생선을 통으로 튀겨서 뼈까지 같이 먹도록.
먹는 데 정답은 없어요. 우리 레스토랑 이름이 왜 코자차 KoJaCha냐면 한국인 셰프가 표현하는 일식과 중식의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이라서예요.(코자차는 일식 스타일과 중식 스타일 메뉴를 교차로 구성한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우리는 맛을 교차한다고 표현해요. 충돌하는 건 피해요. 예를 들면 전어를 회로 낸 다음 뜨거운 탕을 내면 안 되겠죠. 뜨거우면 앞서 먹은 날것의 비린 맛이 올라오니까. 후후 불면서 먹는 뜨거운 요리가 아니라 실온의 미지근한 요리, 튀김처럼 따뜻한 요리가 좋아요. 그런 조화로 일식과 중식이 어우러질 수 있는 거죠.
가을에는 다 맛있어요.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잖아요. 겨울을 나려면 지방을 축적해야 하니까 가을에는 모든 것이 다 살이 오르고 맛있어요. 재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나쁜 재료를 쓰면 맛있을 수가 없어요. 원재료가 좋으면 셰프가 조미료를 덜 쓰게 돼요. 그냥 해도 맛이 나는데 더 이상 뭘 가미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고 보면 가을에는 짬뽕이 최고야.(웃음) 제철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는데. 재료가 좋으면 그 자체에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좋은 재료 고르는 방법이요? 일단 생선은 눈이 까매야 해요. 눈이 흐리멍덩하다? 그럼 간 거야. 핏빛이 거무튀튀해서도 안 되고. 신선한 건 신선해 보여요. 재료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해요.
셰프가 전어를 즐기는 방법
뼈째 썰어 회로 즐긴다. “세꼬시에다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쌍따봉이에요. 거기다가 뭘 더하고 말 것도 없어. 제철 재료가 최고예요. 그 풍요로운 맛을 이길 수 없어요. 신이 먹으라고 준 것인데 그럼 먹으라는 대로 먹어야지. 신이 튀겨서 주겠어요, 구워서 주겠어요. 원초적인 그대로 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