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패션쇼가 있습니다. <보그> 사무실에선 늘 패션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의상과 무대, 특별한 퍼포먼스 또는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패션쇼는 가장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죠. 최근에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패션 디자이너’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시즌마다 8분 정도(톰 브라운의 경우 45분) 길이의 쇼를 선보이기 위해 의상부터 컨셉까지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들 말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패션쇼’와 ‘최고로 꼽은 다른 디자이너의 쇼’는 어떤 것인지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찻잎 점을 보기 위해 컵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들의 대답은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며 ‘아, 이건 정말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할 것입니다. 알렉산더 맥퀸, 헬무트 랭 등 이 목록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디자이너가 몇 있긴 하지만, 특정 컬렉션이 두 번 이상 언급된 디자이너는 세 명에 불과합니다. 마크 제이콥스를 시작으로 사바토 데 사르노, 시몬 로샤, 피터 뮐리에, 안나 수이, 이자벨 마랑, 톰 브라운 등 현재 활약하고 있는 이 시대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패션쇼를 만나보세요.
당신이 참여한 컬렉션 중 가장 기억나는 쇼는 어떤 것인가요?
패트릭: 2016 F/W 컬렉션입니다. 브린과 제가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컬렉션이죠. 그해는 (온갖 협업과 창의성이 모든 과정의 최전선에 있었던) 뉴욕 패션의 황금기가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모든 것이 희망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죠. 우리는 파티장으로 자주 사용되는 중식당이자 연회장인 차이나 샬레(China Chalet)에서 쇼를 열었어요. 모델들은 부스에 앉은 게스트와 소통하며 레스토랑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모델도 있었고, 서로 키스하는 이들도 있었죠. 런웨이를 전력 질주하는 이도, 천천히 걸으며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이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모델들에게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라고 지시했거든요. 이 쇼는 제 마음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바케라의 화두인 ‘즐거운 전복’이 시작된 것만 같아서요.
브린: 저는 2017 F/W 쇼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보그 런웨이에 처음 입성한 쇼이기도 해요. 그땐 ‘진짜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했던 것 같아요. 그 ‘순진함’이 쇼를 더 멋지게 만든 것도 사실이고요. 비록 실제로 입을 수 있거나 판매할 수 있는 옷은 거의 없었지만요. 당시에는 클레어와 데이비드까지, 총 4명이 디자인을 맡았는데요. 다양한 관점이 모인 만큼 컬렉션도 참 역동적이었습니다. 바케라의 가장 상징적인 피스인 티파니 드레스와 미국 국기 드레스도 이 컬렉션에서 나왔죠.
다른 디자이너의 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쇼를 꼽는다면요?
패트릭: 언더커버 2004 S/S 컬렉션입니다. 일란성쌍둥이들이 나란히 모델로 등장하는 쇼죠. 한 명은 ‘보통’의 룩을 입고 있었고, 또 한 명은 그 룩의 왜곡된 버전을 입고 있었어요. 옷깃과 솔기가 흘러내리고, 네크라인은 풀어져 있었죠. 이 컬렉션은 일종의 이형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면의 ‘비뚤어진 거울’이 시각을 속일 수도 있다는 거죠. 피날레에는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Violence Invites Violence)’, ‘죽이는 건 어리석은 짓(Silly to Kill)’, ‘군인이 되고 싶은 사람(Who Wants to Be a Soldier)’ 등 메시지가 적힌 셔츠를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습니다. 평화, 공감의 메시지와 함께 자아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 쇼였어요. 전쟁보다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브린: ‘진짜’ 쇼는 아니지만 영화 <프레타포르테(Ready to Wear)>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누드 쇼가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