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에 익숙해진 탓인지 저에게는 건축 전시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곤 합니다. 건축학도가 아닌 이상 실제 작품이 아니라 사진 자료와 설명 글, 그리고 모형에 감동을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보통 건축 전시는 거장의 훌륭한 건축물 혹은 업적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마련이라, 감탄을 자아낼 수는 있겠지만 공감을 이끌어내긴 힘들죠. 하지만 내년 2월 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이하 <연결하는 집>)전은 제목처럼 일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이 전시를 권하고 싶은 이유 역시 ‘집 이야기’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결하는 집>은 근사한 건축물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한국 현대건축과 함께 주거 문화를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조망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살피고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
본래 집이란 한없이 개인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지표가 되는 사물이고, 그만큼 <연결하는 집>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아파트가 일반화되어버린 현재, 남다른 주거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가족 구성원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경제구조 변동, 기후 위기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기를 고민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30명의 건축가(팀)가 설계한 58채의 주택이 각자의 모습과 사연을 펼쳐냅니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 등 6개의 소주제 아래 촘촘하고 꼼꼼하게 구성된 전시장을 거닐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집들의 존재 자체가 쉽게 답하기 힘든 위 질문들에 대한 일종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주거 문화를 깊이 고민해온 건축가들의 활동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포착한 큐레이션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컨대 승효상의 ‘수백당’, 조병수의 ‘땅집’ 등은 비움의 형식을 드러내고, 최욱의 ‘축대가 있는 집’, 서승모의 ‘R 아뜰리에 한옥’ 등은 자신의 삶과 작업을 일구는 공간을 온전히 실험 무대로 쓴 건축가들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의 ‘홍은동 남녀하우스’와 한양규+윤한진+한승재의 ‘제주 세거리집’ 등은 4인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반려 개념을 담아내고 있죠. 이외에도 새로운 사회 공동체를 상상하는 조남호의 ‘살구나무 윗집 & 아랫집’,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정현아의 ‘와촌리 창고 주택’,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정기용의 ‘춘천 자두나무집’, 도시 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 조민석의 ‘픽셀 하우스’ 등은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집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고 집의 본질을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물론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주택들이 한국 주거 문화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각각의 집은 건축 자체보다 더욱 창의적인 삶의 이야기, 일상의 서사를 품은 단편이 됩니다. 집은 건축가의 의도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니까요. 마침 오늘도 ‘서울의 아파트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요지의 기사가 보이더군요. 이렇게 아파트가 주거 유형을 말 그대로 ‘압도’하는 상황에서 조금은 다른 집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은 곧 나의 삶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보고, 다른 태도로 대하고자 하는 희망과도 이어집니다. ‘나의 집’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로 치환되는 그 지점에서 피어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자,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아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