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1940년대 패션사 수업: 유틸리티 수트, 뉴 룩
2024.06.30by 이소미, 한다혜, Lilah Ramzi
1960년대는 그야말로 큰 변화의 시기였고, 패션은 더욱 그랬다. 한쪽에서는 재키 케네디가 예쁜 파스텔 컬러의 심플하고 단정한 영부인 룩을 선보였다. 다른 쪽에서는 머리를 비달 사순처럼 날렵하게 다듬은 메리 퀀트와 그녀의 친구들이 미니스커트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우주 경쟁에 매료된 이들이 우주에서 입을 법한 드레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반문화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평화와 사랑이 가장 중요했고, 포크풍 히피 패션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게 1960년대 패션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를 휩쓴 패션을 정리했다.
패션 역사상 처음으로 무릎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20년대 신여성들조차 무릎은 가렸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롱스커트를 유행시킨 후 치마는 15년간 조금씩, 꾸준히 짧아졌다. 패션 역사가들은 미니스커트가 등장한 해를 1964년으로 꼽지만 전조는 1957~1958년에도 있었다. 초기 미니스커트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색(Sack) 드레스가 증거로 꼽힌다.
그렇다면 흔히 알려진 대로 미니스커트는 정말 메리 퀀트가 발명한 걸까? 예, 아니요로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1964년 메리 퀀트가 내놓은 저렴한 가격대의 레이스 드레스는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저가 브랜드 ‘메리 퀀트 진저 그룹(Mary Quant’s Ginger Group)’은 젊은 세대 사이에 미니스커트 열풍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무릎 위를 살짝 스치는 정도였던 이 스타일이 널리 퍼지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1960년대 말쯤에는 마이크로 미니스커트 수준까지 도달했다. 다리가 너무 많이 드러나서 속이 비치는 스타킹 대신 타이츠를 신어야 할 정도였다!
1966년 8월 15일 <보그>에는 “다리는 여전히 주인공이며 그게 할 이야기의 전부다. 그리고 앞으로는 정말 다양한 길이의 디자인을 보게 될 것이다. 두 다리에는 실로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1965년 1월 1일 <보그>에는 “청춘의 해, 1965년이 시작되었다. 24세 이하의 인구가 미국에만 9,000만 명을 넘어섰다. 더 많은 몽상가와 행동가로 가득한 이곳, 여기, 지금, 이 순간, 유스퀘이크(Youthquake), 1965년”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만든 이 단어는 당시 대중문화 전반에 일어난 변화를 잘 담고 있다. 1950년대 꾸뛰르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이제 그 자리는 더 젊고, 두 다리를 훤히 드러내며, 로큰롤을 듣고, 오직 한순간만을 위해 옷을 사고 버리는 여성이 차지했다. 이는 곧 셀룰로오스로 탄생한 페이퍼 드레스, 합성 소재로 만든 트렌디한 옷 같은 ‘패스트 패션’의 도래를 이끌었다. 트위기, 진 쉬림튼, 페넬로페 트리는 어떤 모델보다 유스퀘이크 정신을 잘 계승했다.
1960년 미국 텍스타일 섬유 제품 식별법(일명 섬유법)에 따라 패션계는 섬유 함량을 명시하게 된다. 기성복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한 신섬유, 그러니까 퍼스펙스, PVC,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나일론, 레이온, 스판덱스는 모두 놀라운 혁신으로 인정받았다. 이 새로운 텍스타일을 두 팔 벌려 환영한 이들은 세탁 후 다림질 없이 바로 입을 수 있는 옷을 원하던 젊은 층이나 가정을 타깃으로 삼은 기성복 레이블이었다. 1965년 4월 15일 <보그>에도 이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핫 티켓이란 뭘까? 극장가에서는 히트작의 티켓이란 의미로 통한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핫 티켓은 뉘앙스는 비슷할지 몰라도 목적은 다르다. (중략) 패션에서 핫 티켓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옷에 빠짐없이 달려 있거나 꿰매져 있다. 그리고 거기엔 옷을 이루는 소재에 대한 정보가 백분율까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트리아세테이트 등 소설 <1984>나 과학실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이 이제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옷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사실 아직도 하나하나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기능을 지녔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중략) 어떤 원단은 100% 천연섬유이고 또 어떤 원단은 100% 합성섬유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장점과 기능을 지닌 혼방 소재다.”
하지만 모두가 유스퀘이크 스타일을 따른 건 아니다. 여전히 꾸뛰르를 선호하던 여성도 있었다. 그들의 뮤즈는 재키 케네디였다. 미니스커트와 메리 제인이 서브컬처, 즉 하위문화를 대표했다면 재키 케네디는 문화, 그 자체였다. 발망, 발렌시아가, 신생 브랜드였던 지방시 등 수많은 파리 꾸뛰르 하우스가 박시하지만 단정한 테일러드 실루엣을 선보였다. 물론 꾸뛰르 황금기로 불리는 1947~1957년 사이에 탄생한 실루엣은 더 간결했다. 하지만 장인 정신만은 그대로였다.
스커트 세트, 트라페즈 실루엣, 전반적인 단정한 분위기는 파투, 생 로랑, 피에르 가르뎅 같은 디자이너들이 앞장서서 이끌었다. 미국에서는 노먼 노렐, 엘리자베스 아덴, 오스카 드 라 렌타, 셰 니농(Chez Ninon), 올렉 카시니(Oleg Cassini)가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올렉 카시니는 재키 케네디의 개인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유스퀘이크와 함께 패션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가 저렴한 가격대의 세컨드 라인을 내세워 프레타포르테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다. 1959년에는 엠마뉴엘 웅가로가 자신의 이름을 딴 기성복 라인 라이선스 등록을 마쳤고, 1963년에는 메리 퀀트가 진저 그룹 라인을 출시했다. 또 다른 디자이너의 기성복 레이블로는 진 뮈어(Jean Muir)와 존 베이츠(John Bates) 등이 있다.
이전에는 소비자에게 백화점과 하이 꾸뛰르 살롱,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 기성복 디자이너들이 전면에 나서서 소비자를 자신만의 세계로 초대했다. 런던, 뉴욕, 파리 전역에 새로운 부티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티크는 곧 젊은 문화의 본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켄싱턴 애빙던가에 위치한 비바(Biba)는 아르누보풍 인테리어로 런던 사람들을 유혹했다. 카나비 스트리트에는 새빌 로보다 참신한 감각의 남성복 매장이 들어섰다. 뉴욕에서는 벳시 존슨(Betsey Johnson)이 저렴하고 독특한 아이템과 함께 에디 세즈윅을 모델로 내세우며 매디슨 애비뉴의 부티크 파라퍼넬리아(Paraphernalia)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66년 9월 19일 파리에서는 이브 생 로랑이 ‘생 로랑 리브 고쉬(Saint Laurent Rive Gauche)’라는 기성복 부티크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기성복 라인을 가진 최초의 꾸뛰르 디자이너가 되었다.
뷰티계에서는 비달 사순, 그리고 ‘비거 더 베터 아이즈(Bigger the Better Eyes, 클수록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눈)’가 유행이었다. 모델 페기 모핏(Peggy Moffitt)을 위해 탄생한 헬멧 같은 짧은 헤어, 즉 비달 사순의 비대칭적인 5 포인트 커트(다섯 군데를 포인트로 잡아 현대적으로 연출하는 헤어 커트)는 뷰티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계 미국인 배우 낸시 콴을 위한 헤어 커트도 마찬가지였다.
1963년 10월 15일 <보그>에는 “런던의 비달 사순이 낸시 콴에게 해준 헤어 커트는 정말 근사하다. ‘머리카락은 빗질하기 쉬워야 하고, 머릿결은 찰랑거려야 한다’는 사상의 대가 중 한 명이었던 이 젊은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지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메리 퀀트와 미아 패로우 역시 비달 사순의 픽시 커트를 했다. 동그란 그릇 모양의 커트를 할 용기가 없었던 여성들은 진 쉬림튼처럼 볼륨감이 풍성하고 스키 슬로프처럼 끝이 살짝 휘는, 생기 넘치는 앞머리를 연출했다.
당시 화장품 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섀도, 마스카라, 립스틱을 비롯한 화장품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눈을 강조하는 화장법이 유행했다. 속눈썹과 아이라인을 진하게 칠하고, 립스틱은 부드러운 컬러를 사용해 대비 효과를 주는 식이었다.
1960년대 주인공은 단연 이브 생 로랑이었다. 그는 1960년 디올에서 전개한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하우스에서 해고되었다(알제리 전쟁에 징집되기도 했다). 그 마지막 컬렉션은 단연 시대를 훨씬 앞서간 것이었다. 비트닉(Beatnik)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컬렉션은 파리 센강 왼쪽에 몰려 있던 보헤미안 지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라이더 재킷과 튜닉은 꾸뛰르적 구조로 재탄생했다. 그는 문화가 패션에 미치는 영향과 파리 꾸뛰르 의상 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Haute Couture)이 패션 바깥의 문화에서 영감을 얻는 것에 대해 수용적일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962년 그는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이게 된다.
단 몇 년 만에 생 로랑은 아이코닉한 패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1965년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기하학적인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드레스는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1960년대 역동적인 런던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의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앞서간 느낌을 주었다. 1966년에는 여성을 위한 르 스모킹 턱시도를 선보였다. 1967년에 선보인 컬렉션은 사파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리처드 아베돈이 찍은 베루슈카(Veruschka)의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이는 생 로랑에게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이 달에 간 건 1969년이지만 우주 시대 패션은 그보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우주탐사에 대한 시대적 열망은 ‘아토믹’이라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로 표현되었다. 패션계에서는 앙드레 꾸레주,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 등 수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냈다. 꾸레주의 1964년 S/S ‘우주 시대’ 컬렉션에는 알루미늄 포일처럼 반짝이는 은색 비닐로 장식된 PVC 달 소녀(Moon Girl) 룩부터 우주 비행사 모자와 고글, 종아리 중간 정도 길이의 부츠 등이 등장했다. 1966년 피에르 가르뎅은 터틀넥 위에 입는 피나포어 드레스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며 시민권에 대한 목소리도 커져갔다. 평화와 사랑을 외치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1965년 앨라배마에서는 흑인 투표권 박탈에 항의하는 ‘셀마 행진’이 있었다. 1967년에는 수천 명의 히피들이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에 모여 ‘사랑의 여름’이라 불리는 문화 정신을 함께 나눴다. 1969년에는 뉴욕 북부에서 우드스탁 콘서트가 며칠간 이어졌다. 꽃무늬의 보헤미안 맥시 드레스, 루스하고 물결치는 실루엣, 동유럽풍 포크 스타일이 당시 패션의 특징이었다.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 앙드레 꾸레주, 파코 라반, 메리 퀀트, 바바라 훌라니키(Barbara Hulanicki), 로베르토 카푸치(Roberto Capucci),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 올렉 카시니, 루디 건릭(Rudi Gernreich), 노먼 노렐, 네티 로젠슈타인(Nettie Rosenstein), 베라 맥스웰(Vera Maxwell), 위베르 드 지방시, 에밀리오 푸치, 클레어 맥카델(Claire McCardell), 보니 캐신(Bonnie Cashin), 폴린 트리제르(Pauline Trigère), 하디 에이미스(Hardy Amies),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 그리고 피에르 가르뎅.
남성들이 어느 때보다 패션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20세기 내내 남성들에게는 수트 아니면 스포츠 캐주얼 룩이 전부였다. 진지하고 고상한 남성복의 세계에서 컬러, 재치, 개성 등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Marcello Mastroianni)처럼 슬림한 수트를 입은 멋진 캐릭터는 남성들에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패션을 제안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모드(Mod, 모더니스트의 준말)가 된 그들은 터틀넥, 체크 팬츠, 그리고 피에르 가르뎅이 인도 여행 중 네루 재킷(Nehru Jacket)에 반해 만든 칼라리스 아우터 등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카나비 스트리트는 새빌 로의 전통을 거부하는 젊은 쇼핑객으로 북적였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비틀스, 더 후, 롤링스톤스, 지미 헨드릭스 같은 뮤지션들이 보헤미안풍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대를 반영한 패션이었다.
이상주의적인 카멜롯 시대와 함께 시작된 1960년대가 10년간 어떻게 이토록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는 텍사스에서 암살당했고, 5년 후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되었다. 그보다 앞선 1962년에는 마릴린 먼로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고, 1969년에는 맨슨 패밀리(Manson Family)가 벌인 잔인한 테이트 라비앙카(Tate–LaBianca) 살인 사건이 있었다.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낙관주의, 창의성, 독창성, 기술을 활짝 꽃피운 시기이기도 하다. 여성용 피임약이 최초로 출시됐으며, 1963년 8월에는 25만여 명이 일자리와 자유를 위해 (역사적인) 워싱턴 행진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했고, 함께 힘을 합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와중에 비틀스의 음악부터 할리우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까지,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쏟아졌다. 영화계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가 이탈리아의 맘보 영화를 선보였고, 히치콕은 <싸이코>(1960)와 <새>(1963)를 세상에 내보였다.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아티스트는 예술의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