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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방콕이 형성하는 예술 생태계_미술 실크로드

지난해 12월 개관한 딥 방콕은 태국 최초의 국제적 현대미술관이다. 젊은 설립자 푸랏 창 오사타누그라는 이를 기반으로 아티스트, 큐레이터, 디자이너, 미술 교육자가 풍성해지길 바란다.

딥 방콕은 태국 미술계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미술관 건축으로 유명한 WHY 건축의 쿨라팟 얀트라사스트가 설계한 딥 방콕은 총 6,968㎡ 규모로, 11개 전시장과 야외 조각 공원 등을 갖췄다.

한 번쯤 가봤을 인기 여행지 방콕이지만, 태국 현대미술을 목적으로 한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방콕은 미식과 휴양 외에 미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도시다. 태국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 같은 국제적 스타 미술가들이 있기에 앞으로 더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간 현대미술관이 부족해 아쉬웠으나, 지난해 방콕 쿤스트할레(Bangkok Kunsthalle)와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Khao Yai Art Forest)가 문을 열면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며, 2025년 12월 21일 딥 방콕(Dib Bangkok)이 개관했다.

설립자 푸랏 창 오사타누그라는 빅 컬렉터다. 컬렉션 1,000여 점 중에서 80점을 선정해 딥 방콕 개관전 ‘보이지 않는 존재’에 전시한다. 원형 조각품은 알리시아 크바데의 ‘Pars pro Toto’(2020).

몇 년 전부터 기대를 모은 딥 방콕에 대한 궁금증으로 설립자 푸랏 창 오사타누그라(Purat Chang Osathanugrah)와 관장 미와코 테즈카(Miwako Tezuka)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푸랏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젊은 사업가로 프리즈·키아프 서울 포럼에 참여했고, 지난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미술 애호가를 위한 프리뷰 파티를 열어 직접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딥 방콕 미술관 개관 기념 전시는 <보이지 않는 존재((In)visible Presence)>다. 컬렉션 1,000여 점 중에서 80점을 전시하면서 이곳만의 DNA를 보여주게 된다.

설립자 푸랏은 서울, 도쿄, 홍콩처럼 방콕도 창의적인 현대미술관이 있다는 데 자부심이 컸다. “딥 방콕이 태국 최초의 국제적 현대미술관이면서 우리 컬렉션을 더 많은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기뻐요. 돌아가신 아버지 펫 오사타누그라와 제가 예술에 비슷한 감정을 가져서 행운이죠. 감정적, 지적, 심지어 영적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에 끌렸습니다. 이제 우리 컬렉션은 딥 방콕에 소장되고, 더 이상 가족만의 열정이 아니라 공공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미와코 관장이 푸랏의 예술적 지휘 아래 기획한 첫 번째 전시 <보이지 않는 존재>는 몬티엔 분마(Montien Boonma), 이불, 안젤름 키퍼,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 등 예술가 40명의 대표 작품 80점을 모았다. “개관 전시인 만큼 딥 방콕의 DNA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회화, 조각, 설치,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의도적으로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태국과 국제적인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신비로운 영성을 담길 바랐습니다. 태국 마스터피스 중 일부는 수십 년 만에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기에, 이번 전시는 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이 될 거예요.”

독일의 설치미술가 레베카 호른(Rebecca Horn)의 ‘The Lover’s Bed’는 침대라는 사적인 공간을 통해 사랑, 욕망, 상처, 기억 등 감정의 층위를 탐구한다. ©Stefan Haehnel, Courtesy Galerie Thomas Schulte, Berlin

전시 제목 ‘보이지 않는 존재’는 ‘시각을 넘어서는 예술의 보이지 않는 존재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접근으로 선정한 미술가 40명의 작품은 의미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감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지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푸랏은 소리, 향기, 빛을 가진 작품이 시각 과잉 시대에 사는 우리의 다양한 감각을 활성화한다고 설명했다. “개관전 하이라이트는 태국 현대미술 창시자로 불리는 몬티엔 분마의 주요 작품입니다. 그는 1980년대 유럽에서 공부했지만, 작품의 뿌리를 태국 불교의 영성에 두고 있어요. 작품은 인류애와 초월에 대한 질문을 담으며, 여러 작품이 한약재와 향신료를 사용하기에 전시를 사색과 치유 공간으로 만듭니다. 처음 선보이는 작품도 많으니,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안식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21세기 미술관의 중요 덕목 중 하나인 건축도 매력적이다. 방콕 시내 한복판에서 1980년대 창고로 사용되던 오래된 건물을 보았을 때, 푸랏은 이곳에 미술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미술관 건축으로 유명한 WHY 건축의 쿨라팟 얀트라사스트(Kulapat Yantrasast)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미술관은 총 6,968㎡ 규모이며, 11개 전시장과 야외 조각 공원, 특별 행사를 위한 펜트하우스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중앙에 있는 ‘열린 안뜰’입니다. 빛과 바람, 기억이 그곳에 모여드는 것 같아요. 미술관이 가장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곳으로, 단순히 지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푸랏은 “쿨라팟이 과거를 지우기보다 공간을 통해 치유하고 되살리는 건축가”라고 호평했다. 쿨라팟은 안도 다다오를 사사하고, 메트로폴리탄·루브르 박물관과 협업한 적 있는 만큼 예술과 건축이 어떻게 대화하는지 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쿨라팟이 방콕을 잘 이해한다는 점이다. 혼돈 사이 고요, 콘크리트 아래 숨겨진 부드러움 같은 방콕만의 리듬 말이다. “방콕의 매력은 이런 대조적인 모습에 있어요. 일상과 신성한 것, 구시가와 신시가가 어우러져 있죠.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우리 미술관은 멈춤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조용한 사색과 함께 방콕을 재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미술관 이름 ‘딥(Dib)’은 원시 혹은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와코 관장은 미술관의 세 개 층이 깨달음을 향한 불교의 길을 은유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층은 콘크리트 기둥과 배관이 드러난 광활한 공간을 통해 산업도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안쪽으로 이동하면 나타나는 2층은 오래된 태국과 중국 스타일 창문을 가진 낮은 공간이기에 친밀하면서도 명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지막으로, 3층에 올라가면 높은 천장의 채광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요.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듯하죠.”

딥 방콕에서는 태국 작가의 걸작과 세계적인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솜분 홈티엔통(Somboon Hormtientong)의 ‘The Unheard Voice’는 태국 북부의 불교 사원 기둥 14개를 수평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방콕에는 많은 쇼핑몰이 있는 반면 속도를 늦춰 생각할 공간은 적다. 푸랏은 방문객에게 제품을 사달라고 매달리지 않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과 예술이 숨 쉴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는 기업가로서 사업을 목적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방콕 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의 목적은 교육과 예술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를 만드는 두 가지 기초지요. 그간 방콕 대학교에서 이를 추구해왔고, 이제 미술관을 통해 학습과 수행을 실천하려고 해요. 예술가뿐 아니라 큐레이터, 디자이너, 교육자 등 문화를 만드는 사람을 양성하고 싶어요. 예술 세계는 오케스트라와 비슷해요. 솔리스트와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태국은 이런 생태계를 구축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 미술관이 동남아시아의 창의성을 발견하고 국제적으로 연결되도록 살피는 시도 자체가 교육이라고 본다. “미술관을 만들면서 힘든 일이요? 먼지, 마감 일정, 디자인 논쟁 등 수많은 도전 과제가 있었지요. 콘크리트의 균열이 ‘와비사비(わびさび)’인지 ‘부실 시공’인지 몇 주 동안 논쟁을 벌였어요. 이런 것이 방콕의 아름다움이죠. 가끔은 불완전한 것이 중요합니다.”

문명, 자연, 기술의 교차점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하고 영상 매체, AI 등의 도구로 풀어내는 현대미술가 이진준의 ‘Daejeon, Summer of 2023’, 2023. Photographer Auntika Ounjittichai, 2025

딥 방콕은 한국 미술가 이불·이진준의 주요 작품을 컬렉션했으며, 푸랏은 한국 미술 생태계에 매료돼 있다. 짧은 시간에 한국 미술 기관·수집가·관람객이 성숙해진 풍경에 놀랐고, 미술계가 움직이는 방식에서 일정한 리듬과 규율을 발견했다. 재즈를 특정 국가의 전유물로 여길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을 국가적 범주에서 엄격히 규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 미술을 관통하는 역사와 감정의 흐름을 존중하며, 작품이 고도로 개념적이거나 기술적일 때도 집단 기억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에 매혹되었다. “예를 들어 이진준 작가의 작품은 기술을 통해 정체성과 시간을 탐구합니다. 개인적인 동시에 인간적이지요. 이것이 현대미술의 아름다움이며, 국경을 초월한 영혼의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딥 방콕은 2026년 새로운 전시 기획을 마쳤다. 두 번째 전시에서도 주제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영향력 있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개관전의 의미를 이어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감지하느냐’는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현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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