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 스타일
켄달 제너가 100만원이 넘는 호텔 슬리퍼를 신었다
2024.05.11by 황혜원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마주할 거라 상상도 못한 신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누비고 있습니다.
알라이아의 피시넷 슈즈는 메시 발레 플랫 열풍을 이끌었고, 프라다의 납작한 새틴 뮬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새침하게 만들었습니다. 망고와 시에드레스(Siedrés)의 협업으로 탄생한 메시 비즈 장식 슈즈는 틱톡을 휩쓰는 중이지요. 모두 아이 다루듯 귀하게 대하고픈 모양새입니다. 걸음 한번 잘못 내디뎠다간 그길로 신발 수명도 끝이 날 것만 같죠(겨울 버전으로는 복슬복슬한 모피 슈즈가 있습니다).
그다음 차례는 아마 이 슈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 켄달 제너가 신으며 한차례 화두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더 로우의 2024 프리폴 컬렉션에 등장한 프란시스 슬리퍼입니다. 최고급 실크 테리 소재로 만들었죠. 단, 밑창은 실내외를 모두 오갈 수 있는 가죽 소재고요.
룩은 더 로우답게 차분했습니다. 그래서 슬리퍼가 더욱 돋보였죠. 옷은 신경 써서 차려입었지만 신발 갈아 신는 건 깜빡한 듯한, 무심하고 불완전한 실루엣! 이런 은근한 엉뚱함과 약간의 흐트러진 매무새는 더 로우만의 럭셔리 무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가격은 135만원대를 웃돕니다. 언뜻 보면 그저 재치를 뽐내거나 언뜻 화제성을 노린 게 아닐까 싶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더 로우입니다. 현실적이면서도 럭셔리한 일상을 꿈꾸게 만드는 하우스죠. 그러니까 한마디로 더 로우는 호텔 슬리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진심이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밖으로 나돌기는커녕 발 보호도 턱도 없어 보이는 신발들이 꾸준히 화두에 오르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예쁘고 말고를 논하기 전에 말이죠. 의견은 다양합니다. 팬데믹 이후 흐릿해진 안팎의 경계, 미니멀과 네이키드 스타일의 확장,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잘못된 신발 이론‘, 또 누군가는 그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패션계의 자연스러운 흐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가장 솔깃한 목소리는 조용한 럭셔리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겁니다. 신발을 아껴 신지 않아도 되는, 험한 길을 급히 걸을 필요 없는 삶의 상징과도 같은 거라고요. 더 로우가 호텔 슬리퍼로 그리고자 했던 풍경도 여기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군요. 느릿한 일상과 느긋한 휴식을 누리는 삶이요.
단지 켄달 제너가 신었기 때문에 눈여겨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올슨 자매는 트렌드에 관해서라면 거의 투시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이들입니다. 2018년 플립플롭의 부활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만 봐도 그렇죠. 여담으로 2018년은 저스틴 비버가 호텔 슬리퍼를 신고 세상을 거닐던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르는 일입니다. 몇 시즌 뒤 우리는 부드러운 실크 소재의 호텔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나설지도요. 곧 다가올 트렌드를 위해 조언하고 싶은 스타일링 팁은 딱 하나뿐입니다. 옷만큼은 의식적으로 잘 차려입으세요. 진짜로 ‘흐트러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면요. 더 로우의 컬렉션만 훑어봐도 감이 올 겁니다.
호텔 슬리퍼를 신는 순간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묘한 안정감,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겁니다. 보송한 카펫 대신 거친 아스팔트를 밟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는군요. 어쩌면 이런 신발이 자꾸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생경한 감각의 경험이요. 발등을 간질이는 복슬복슬한 모피 장식, 망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얇은 밑창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땅의 열기와 지형, 이런 감각을 느긋하게 곱씹어볼 수 있는 삶이 진짜 럭셔리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