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직장인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 왜 도대체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일을 잘할수록 오히려 퇴근이 늦어지니 말이다.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마쳤을 때 동료나 상사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업무를 더 주거나 자신의 일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은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 계산을 잘해서 일부러 천천히 해서 퇴근시간이 임박해 일을 끝낼 때도 많다. 업무 중간중간 웹 서핑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왜 희한하게 퇴근하기 한 시간 전부터 보고서를 제출해달라, 서류 작업 좀 해달라 등의 요청이 쇄도하는 걸까? 거기에 퇴근 전까지 해달라는 옵션이 붙는다. 평일이면 참을 수 있지만 금요일이라면 정말 폭발하기에 이른다. 물론 상사도 그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임박해서 자료 요청을 요구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요청이 방대한 양이거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의 경우에는 정말 한숨만 나온다.
간혹 사무실의 대표 전화가 내 전화기로 자동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전화받을 일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아 스트레스다. 관련 부서에 직접 연결될 수 있게끔 내선 번호를 눌러도 되는데 꼭 사람들은 알아서 연결해 주겠거니 기다린다. 회사로 걸려온 전화니 내 마음대로 끊을 수도 없고, 해당 부서나 담당자를 연결해 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자리에 없다. 분명 좀 전까지 눈에 보였는데 필요로 하면 보이지 않는 게 바로 담당자다.
정말 미스터리 중 미스터리다. 보통 오전 9시 출근이면 최소 10분 전에는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오후 6시에 퇴근하려고 하면 무슨 급한 일이 있냐며, 왜 벌써 가느냐고 물어본다. 생전 지각 한번 안 하다가 하루 딱 10분 지각했는데 30분을 혼나야 하기도 한다. 출근시간에는 이렇게 엄격한데 왜 퇴근시간에 대해서는 엄격하지 않은 걸까? 퇴근을 앞두고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기도 눈치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월급날 아침은 기분이 좋다. 매번 같은 금액이 찍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런데 그 기분은 딱 아침까지만이다. 점심 이후에 스마트폰으로 계속 알림이 오기 시작하고, 월급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돈을 가져간다. 남는 건 카드 좀 작작 쓸 걸 하는 후회 뿐. 통장이 텅장이 되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주말이 껴있다면 2~3일은 잔고가 두둑하겠지만, 월요일이나 연휴가 끝나면 칼같이 가져가니 두둑한 잔고는 마치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