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고티에는 프랑스 의상 연합의 인가를 받은 16개 공식 오뜨 꾸뛰르의 멤버입니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2020년 1월 은퇴를 선언했고, 그가 이끌던 브랜드는 2021 F/W 시즌부터 아베 치토세, 글렌 마르탱, 올리비에 루스테잉 같은 게스트 디자이너를 초빙해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죠. 이번 컬렉션의 지휘봉은 하이더 아커만이 잡았습니다.
하이더 아커만은 장 폴 고티에와 그의 하우스를 위해 일하게 된 것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그와 찍은 사진은 물론 꾸뛰르 피스 제작 과정을 업로드하며 기대감을 고조시켰죠. 그런데 하이더 아커만은 장 폴 고티에와 완전히 다른 성향의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유머가 부족하고 진중한 디자이너라고 본인을 설명하며 장 폴 고티에 하우스 특유의 즐거운 분위기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죠. 그럼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성을 향한 사랑과 경외, 존경심이 바로 그것이죠.
그리고 하이더 아커만은 전임 디자이너 3인과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장 폴 고티에와 그의 디자인을 위해 바친 2022 F/W 꾸뛰르 컬렉션은 “꾸뛰르 같지 않다”, “장 폴 고티에의 예전 컬렉션을 보는 것 같다”는 비판에 직면했죠. 반면에 하이더 아커만은 장 폴 고티에가 자랑하는 아틀리에와 장인들의 솜씨를 빌려 본인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모든 룩이 꾸뛰르적이기까지 했고요.
Courtesy of Jean Paul Gaultier
그런데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여성을 향한 사랑과 경외, 존경심이죠. 그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감정을 풀어냈습니다. 컬렉션의 17번 룩을 볼까요? 프랑스어로 자유를 뜻하는 리베르테(Liberte)라는 레터링이 돋보입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이란의 여성 인권 시위에 대한 그의 메시지였죠. 쇼가 끝나고 그는 이 룩에 대해 오뜨 꾸뛰르의 진정한 주인공은 여성 모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여성, 그리고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이더 아커만은 쇼 음악과 전체 구성 역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여성을 위해 바쳤죠. 쇼는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배우이자 가수 조아나 프레이스(Joana Preiss)는 저널리스트 소피 퐁타넬(Sophie Fontanel)이 이란 시위에 대해 쓴 글을 낭독했습니다. 이어 이란 출신의 가수 셰르빈 하지푸르(Shervin Hajipour)의 노래 바로예(Baraye)가 쇼장을 가득 채웠죠.
페르시아어로 위하여를 뜻하는 이 곡을 발매한 그는 며칠 뒤 이란 당국에 체포되었고, 유튜브에서 노래를 삭제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낡은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자, 모든 여성과 그들의 삶, 자유를 위하여라는 가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그 후 이란 시위의 주제가가 되며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뜨 꾸뛰르 쇼장이라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초현실적이고 환상 동화와 같은 공간에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평생을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운 가수 니나 시몬은 예술가의 의무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본인의 노래 시너맨(Sinnerman)에서 파워를 외친 것처럼, 하이더 아커만은 쇼를 통해 모두를 위한 자유를 외쳤습니다.
